[제240호 기획: 디지털 경제 시대의 유령노동]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과 새로운 노동의 등장

인간의 노동은 4차 산업혁명 때문에 축소된 것 같으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24시간 지속되고 있다. ‘유령 노동자’라고 불리는 이들의 노동 환경 및 처우는 매우 열악하다. 노동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한 노동자 보호 체계는 수립되어 있지 않다. 이에 본 지면은 유령 노동에 대한 현실을 조명하여 앞으로 기대되는 노동자 처우를 살펴보고자 한다.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 속에 세계적으로 미래의 일자리와 노동의 질, 그리고 새롭게 등장하는 고용 형태에 대한 관심이 높다.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은 새로운 산업 ‘혁명’으로 불릴 정도로 사회 전반에 급속하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는 전에 없던 새로운 노동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사물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기술의 활용은 일자리를 창조하는 동시에 과거의 일자리를 파괴하고 있다. 긱 노동(Gig work)의 등장과 함께 노동시장으로의 진입과 이탈이 유연하고 임시적으로 변화하면서 표준적 고용형태(Standard employment)는 지속해서 줄어들고 있으며, 알고리즘과 데이터에 기반한 새로운 관리방식이 관료적 통제를 점차 대체하게 됨에 따라 전통적인 인적자원관리 방식과 노사관계 역시 유례없는 변화를 목전에 둔 상황이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디지털 경제의 핵심자원이라고 할 수 있는 데이터를 가공하고 분석하는 일은 새로운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적 업무로 등장하고 있다. 많은 양의 데이터를 확인, 분류, 필터링, 암호화하는 업무는 인공지능 기술을 고도화시키는데 필수적인 노동이다. 하지만 데이터를 다루는 일의 중요성과는 별개로 아직까지 이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노동조건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고 제대로 알려진 바도 많지 않다. 다만 제한적으로나마 지금껏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러한 종류의 디지털 노동의 대부분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저임금과 고용 불안정, 정보 비대칭, 불분명한 일과 삶의 경계, 사회적 고립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1) 또한, 단순반복적인 업무로 쉽게 제3세계로 하청화될 수 있고, 머지않은 미래에는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도 크다. 이라니(Irani)는 이런 종류의 새로운 노동자를 일컬어 ‘데이터 문지기(Data Janitors)’라고 명명한 바 있으며, 로버츠(S.T. Roberts)는 ‘숨겨진 디지털 노동(Hidden digital labor)’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콘텐츠 조정과 가려진 노동

 콘텐츠 조정 업무(Content moderation)는 디지털 경제 시대의 대표적인 숨겨진 노동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유튜브에는 분당 300시간에 달하는 영상물이, 페이스북에는 매일 4억 개의 사진이 게시되고 있다. 이용자 생산 콘텐츠(User generated content)가 급증한 가운데 부적절한 콘텐츠의 생산과 유포가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저작권이나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에서부터 음란물이나 혐오 콘텐츠와 같은 유해 콘텐츠, 피싱 사기(Phishing scam), 가짜 뉴스 등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상품 홍보 등의 상업적 목적이나 범죄 목적에서 조직적으로 게재된 것도 있고 극단적으로는 테러 집단에 의해 전쟁범죄 영상들이 의도적으로 유포되기도 한다. 많은 인터넷 기업들은 해당 콘텐츠들에 대응하기 위해 콘텐츠들을 감시하고 그 중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콘텐츠를 차단하거나 삭제하는 일련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이를 가리켜 콘텐츠 조정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오프라인상의 청소부들이 각종 오물을 청소하듯 온라인 공간을 정화하는 디지털 세계의 청소부라고 할 수 있다.2) 아이러니하게도 현실 세계의 청소 노동자들이 빌딩 속의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일하듯 콘텐츠 조정자들은 플랫폼 이용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은 채로 일하고 있다.

▲ 콘텐츠 조정 업무의 흐름 ⓒ Accenture(2017)

 콘텐츠 조정 업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부족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나 기계가 처리하고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조정 업무의 상당 부분은 인공지능이 처리하고 있고, 그 범위 역시 점차 넓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문제와 맥락화(Contextualized)된 정보를 포함하는 콘텐츠 고유의 특성상 이를 전적으로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앞으로도 상당 시간 동안 콘텐츠 조정 업무는 지금과 같이 인공지능과 인간 노동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인간이 수행하는 콘텐츠 조정 업무는 피드백 프로세스에 의해 인공지능을 학습하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인공지능에 의한 콘텐츠 조정의 범위는 계속 확장되어 간다.

콘텐츠 조정 업무의 현실과 문제

 콘텐츠 조정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되는지 그 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치는 없다. 다만 해당 업무가 가장 많이 몰려 있는 필리핀 지역에만 약 10만여 명에 달하는 종사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대부분 콜센터처럼 외주화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인터넷상의 콘텐츠를 다루는 업무이기 때문에 콘텐츠가 게시된 플랫폼이 호스팅 된 곳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업무를 수행하는 데 문제가 없다. 그리하여 주요 인터넷 기업들은 본사를 두고 있는 실리콘밸리 대신에 인건비가 싼 인도와 필리핀 지역으로 하청을 주고 있다. 화려한 첨단산업의 어두운 그림자는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제3세계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최근에는 외주화에서 한발 더 나아가 마이크로노동(Micro labor)이라는 새로운 노동 형태가 콘텐츠 조정에 등장하고 있다. 웹 기반(Web-based) 플랫폼 시장이 성장하면서 조정 업무를 과업 단위로 쪼갠 뒤 이를 아마존 메케니컬 터크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하여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배분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마이크로노동은 기존의 직영(In-house)이나 외주화 형태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플랫폼 노동의 특성상 노동자가 아니어서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기업이 제공하는 각종 복리후생이나 복지혜택도 전혀 받을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콘텐츠 조정자들이 음란물이나 학대 영상, 혐오 발언 등과 같은 위험 콘텐츠에 지속해서 노출되어 있음에도 기업은 노동자들이 겪는 심리적 피해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고용 관계를 맺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의 경우 아직 플랫폼을 통한 업무 배분은 일반화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플랫폼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해외처럼 조정 업무를 마이크로노동의 형태로 처리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물론 외주형태로 업무를 수행해도 콘텐츠 조정자들은 상당 수준의 직무소진을 경험하고 있고 다양한 심리적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실제 미국에서는 페이스북의 콘텐츠 조정 업무를 수행하던 노동자가 적절한 보호조치를 받지 못해 심리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며 페이스북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일도 있었다.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많은 양의 이용자 생산 콘텐츠가 실시간으로 유통되고 있는 시대에 콘텐츠 조정자는 매우 중요한 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수행하는 노동의 가치와 중요성을 고려할 때 이들이 경험하는 노동조건은 지나치게 열악하다. 무엇보다 심각한 심리적 트라우마로부터 이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가 가장 큰 과제이다. 이와 관련하여 유튜브, 페이스북, 애플과 같은 유력한 IT기업들로 구성된 ‘기술 연합(The Technology Coalition)’이 마련한 가이드라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술 연합은 아동에 대한 성적 학대를 막기 위해 문제가 되는 콘텐츠에 적극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진 느슨한 연대체인데, 아동학대 콘텐츠를 다루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이들의 심리적 회복력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자발적 행동규범으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바 있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아동학대 콘텐츠에 한정하여 작성되었으나 콘텐츠 조정 업무 일반에도 많은 시사점을 갖는다. 가이드라인의 구체적 내용에 의하면, 일차적으로 유해한 콘텐츠에 노출되는 빈도와 시간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 유해한 콘텐츠를 다룬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덜 유해한 내용을 검토하게 한다거나 하루에 검토해야 할 콘텐츠의 적정량에 대한 기준을 수립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종류의 노동이 가져올 수 있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사전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사전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자신이 하게 될 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무방비 상태에서 일을 시작하는 콘텐츠 조정자들도 많기 때문이다. 끝으로 기업이 심리상담이나 교육 등을 포함하는 공식적인 ‘치유(Resilience)’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노동자의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외에도 콘텐츠 조정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방안들이 실현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콘텐츠 조정에 대한 공적 관심을 높여야 한다. 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사업상 기밀이라는 이유로 콘텐츠 조정 업무를 비밀스럽게 운영하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 감시 역시 기술적 장벽과 제도의 공백 속에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대로는 아무리 훌륭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더라도 강제성을 갖기 어렵다. 따라서 지금 상황에서 콘텐츠 조정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들의 노동을 우리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리고, 이들의 노동환경에 대한 더 많은 연구 조사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출발점이다.

[각주]
1) Degryse, C. (2016). Digitalization of the economy and its impact on labour market. Brussels: ETUI.
2) Sarah T. Roberts (2014), Behind the screen: The hidden digital labor of commercial content moderation, Doctoral dissertation,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장 희 은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