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3호 영화비평: <미스비헤이비어 Misbehaviour>(2020)] 다양한 차이 속 여성들의 하나의 외침

“올해는 누가 미스코리아 진(眞)이 되었죠?”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언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답하기에 앞서 ‘미스코리아 대회가 아직 열리고 있었어?’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지금은 우리의 관심 밖에 놓여 있는 미스코리아 대회를 온 국민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보던 때가 있었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출연자 한 명 한 명을 꼼꼼히 살피면서 화 면 한구석에 나온 점수를 계산해 보고 누가 우승할 것인지를 점치는 것은 꽤 오랫동안 온 국민의 연례행사였다. 1972년부터 공중파를 통해 중계되었던 미스코리아 대회는 1990년대에 이르러 외모지상주의와 여성 상품화라는 비판을 받았고, 1999년에는 페미니즘 잡지 《이프》의 주도로 미스코리아 대회에 반대하는 ‘제1회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 변화 속에서 미스코리아 대회는 2002년부터 메이저 채널에서 사라지게 된다. 2004년에는 수영복 공개 심사를 없애는 등 변화를 꾀하기도 했지만, 2020년 오늘 미스코리아 대회는 과거의 유물 같은 행사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예쁘지도 추하지도 않다! 우리는 화가 났을 뿐!

 한국에서 미스코리아 대회의 텔레비전 중계가 시작되기도 전인 1970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미스월드’행사장에서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달 착륙 중계나 월드컵 결승 중계보다도 많은 1억 명의 시청자가 지켜보았다는 1970년 ‘미스월드’ 대회 현장에서 여성운동가들이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반대하고 여성해방을 주장하는 구호를 외치며 무대로 뛰어올라 행사를 중지시켰고, 이것이 텔레비전을 통해 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중계된 것이다. 당시 전 세계 신문 1면을 장식한 이 사건은 2세대 페미니즘이 자신들의 존재와 목소리를 세계에 각인시킨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영화 <미스비헤이비어>는 이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촘촘하게 엮어낸 영화다. 또한 1960년대 이후 페미니즘 운동에서 논의되었던, 그리고 여전히 의미 있는 질문들을 사려 깊게 담아내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중심인물은 ‘미스월드’ 대회에서의 반란을 주도한 샐리 알렉산더(키이라 나이틀리) 와 조 로빈슨(제시 버클리), 그리고 1970년 ‘미스월드’의 우승자 제니퍼 호스텐(구구 바샤-로)이다. 샐리는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늦깎이 학생이자 엄마이다. 여성노동이라는 그녀의 논문 주제가 지나치게 협소한 것이니 바꾸는 게 좋겠다는 교수나 동료 남학생들의 내용 없는 토론에 샐리는 대학 생활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조는 페미니즘 운동가 초청 강연에서 샐리와 처음 마주친 인물인데, 그녀는 길거리에 스프레이로 여성운동 슬로건을 쓰고 도망가기, 전단 붙이기 등의 행동으로 기존 질서에 저항한다. 샐리의 대학 공부를 남성중심 체제에서 한자리하려는 것으로 치부하는 조는 동료 여성들과 자매애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샐리가 조의 여성들의 모임에 참여하면서 그들은 함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제사회가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그들은 ‘미스월드’ 훼방 사건을 주도하고, 결국에는 함께 기소된다. ‘우리는 예쁘지도 추하지도 않다! 우리는 화가 났을 뿐!’ 이라는 그들의 슬로건은, 남성중심의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에 맞춰 존재하기를 강요받아 온 여성들이 외치는 자기 해방의 목소리이다.
 또 다른 주인공 제니퍼는 샐리나 조와는 다른 위치에서 세상에 변화를 꾀하는 인물이다. ‘미스월드’대회 참가자 중 한 명인 제니퍼는 최초의 미스 그레나다로서 백인 중심의 ‘미스월드’ 대회에서 소수인 흑인 참가자이다. 금발의 백인 여성만을 주목하는 언론과 대회 관계자의 태도를 보면서 제니퍼는 ‘미스월드’ 대회에서 우승하겠다는 각오를 키운다. 최초의 미스 그레나다로서국가적인 지지와 본인의 의지로 결국 우승 왕관을 거머쥔 제니퍼는, 더 많은 흑인소녀들이 자신을 통해 희망과 꿈을 갖게 된 것에 기뻐한다. 여성의 몸을 가축시장의 가축처럼 수치화하고 남성중심 시선의 대상으로 전시하는 ‘미스월드’를 공격 대상으로 삼은 여성과 ‘미스월드’ 대회에서 우승하여 자신의 피부색에 가해지는 차별을 바꾸겠다는 여성 사이의 긴장은 중반 이후 영화 서사 전반을 지탱하는 중요한 힘이다. 페미니즘 운동사의 실제 사건을 다루면서 <미스 비헤이비어>가 예상을 뛰어넘는 지점이 바로 이것인데, 이 영화는 같은 성을 가진 여성들 간에 존재하는 피부색, 계급, 세대 등에 따른 차이는 물론, 그 차이에 따라 개개인이 선택하는 자기 해방의 실천적 차이를 세심하게 보여준다.

다양한 차별의 얽힌 관계 속에 놓인 여성들

 1960년대 대항문화의 풍토에서 성장한 2세대 페미니즘은 남성생계부양자 중심의 가족형태에 반기를 들고, 가족 내 남녀 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와 성적억압 등의 문제의식을 발전시켜나갔다. 페미니즘 운동의 성장과 대중화로 여성들 내부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계급과 피부색은 물론 성적지향 등 여성들 내부의 차이라는 문제는, 백인 중산층 여성 중심의 관점에서 정립된, 가부장제로 인한 여성억압이라는 단일한 차별의 고리만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었다. 킴벌리 크렌쇼(Kimberl ́e Crenshaw)의 ‘교차성’ 이라는 개념이 설명하듯이, 여성으로서 흑인 여성은 백인 여성과 다른 방식으로 취급받는다. <미스비헤 이비어>는 바로 이러한 여성들 내부의 차이와 그들 앞에 놓인 현실적 선택지의 차이, 그리고 관점과 실천의 차이를 내밀하게 조망하면서, 동시에 여성들이 희망했던 공통된 욕망과 목표를 그려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페미니즘 운동, 구체적으로 말하면 2세대 페미니즘 물결에 대한 한 편의 입문서 같은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미스비헤이비어> 스틸컷

 <미스비헤이비어>에서 가장 큰 줄기를 차지하는 것은 앞서도 말했듯이 1세계 백인 여성인 샐리와 조 그리고 3세계 흑인 여성인 제니퍼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 관계다. 샐리와 조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스월드’는 제니퍼에게는 더 없이 중요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들이 직접 갈등하는 순간은 없다. 영화는 ‘미스월드’ 반란을 계획하는 샐리와 조, ‘미스 월드’를 준비하는 제니퍼의 이야기를 병치해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두 인물 사이의 긴장을 쌓아 올린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 두 인물이 서로에게 반응하는 장면은 매우 한정적인데 그 중 하나는 샐리가 ‘미스월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텔레비전 토크쇼가 방송될 때 제니퍼는 숙소의 텔레비전을 꺼버리는 장면이고, 또 하나는 ‘미스월드’ 대회가 끝난 후 화장실에서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났을 때이다. 기습시위로 ‘미스월드’를 중단시키고 경찰에게 체포되어 가던 샐리는 잠깐 들른 화장실에서 우승 왕관을 차지한 제니퍼와 마주친다. 대회에 참가했던 여성들을 공격한게 아니었다며 축하한다는 샐리에게 제니퍼는 “당신처럼 선택을 하며 살고 싶은 거예요.”라고 말한다. ‘미스월드’를 가운데 두고 서로 다른 입장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두 사람이 원했던 것은, 온전한 자율성을 가진 진정한 자기해방의 상태 하나였던 셈이다.
 영화 속에 보이는 여성들 간의 차이는 비단 피부색만에 국한되지 않는다. 샐리를 비롯한 젊은 여성과 샐리의 어머니, ‘미스월드’ 주최자인 에릭 몰리(리스 이반스)의 부인이면서 ‘미스월드’ 의 중요한 비즈니스를 성사시켜가는 줄리아(킬리 호이스)와 봅 호프(그레그 키니어)의 아내로 대변되는 기성세대 여성 간의 세대 차이도 있다. 같은 금발에 백인인 미스 스웨덴과 미스 U.S.A. 사이에는 계급 차이가 존재한다. 모든 언론이 우승자로 예상하는 미스 스웨덴은 정작 ‘미스월드’대회에 대한 혐오감을 숨기지 않는다. 반면 미국의 작은 시골도시 출신인 미스 U.S.A.에게 ‘미스월드’는 고향인 시골을 벗어나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를 선사할 유일한 방법이다. 샐리와 조, 그리고 같은 흑인이지만 제니퍼와 미스 아프리카 사우스(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반대자들의 대회 보이콧을 막기 위해 주최 측은 남아공의 흑인 대표를 급하게 섭외하는데, 그 결과 남아공의 대표는 흑인과 백인 두 명이 된다. 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백인 대표는 미스 사우스 아프리카, 흑인 대표는 미스 아프리카 사우스로 부른다) 사이에도 계급 차가 있다. 같은 여성들 간의 이와 같은 다양성은 영화 곳곳에서 작은 긴장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영화의 질문과 미덕은 한층 풍성해진다.
 제니퍼가 샐리를 끌고가는 경찰들에게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으로 그들간에 존재하는 자매애가 드러나기는 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 간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작은 긴장들을 영화는 모두 해소시켜버리지는 않는다. 영화에서 그렇듯이 차이의 긴장은 현실에도 존재하며 그 긴장과 함께 페미니즘 운동은 지속되어 왔다. 차이의 긴장 가운데 하나의 이상을 공유하며 나아가는 것. 영화 <미스비헤이비어>가 이해하는 페미니즘의 역사란 이것이 아닌가 싶다.

성 진 수 / 영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