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0호 테마비평: 옴니버스를 통한 매체비평] HTML의 파편을 주워가며, 넷플릭스와 옴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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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디바이스와 인터넷의 언어, HTML

 새삼스레 인터넷이 현대사회에 미친 영향을 강변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아마 이 글도 종이보다는 액정으로 보는 독자가 더 많을 것이다. 어쩌면, 이라는 말을 붙일 필요도 없이 인터넷 공간은 이미 가상이 아닌 실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 공간은 각자의 디지털 디바이스에 연결되어 실시간 일상에 틈입한다. 하지만 우리는 인터넷과 디지털 디바이스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독자들이 이 글을 온라인을 통해 읽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몇몇은 이 글을 대학원보 홈페이지를 방문한 뒤에 읽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독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링크, 본문에서 다루는 키워드들을 검색엔진에서 검색하다가 우연히 이 글을 만났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다수의 독자는 대학원보의 유통맥락과 큰 상관이 없을 것이다. 꾸준히 대학원보를 접하는 이들도 아닐 것이며, 따라서 대학원보를 일부러 찾아온 이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 글의 대다수 독자는 대학원보와 상관없는 공간을 통해, 대학원보 안에 실린 이 글을 읽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 글을 만난 경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인터넷에서 우연히 읽게 되었다’고 답할 것이다. 여기서 우연이라는 단어에 집중해보자. ‘우연’이라는 단어를 ‘의도치 않게’라는 말로 바꾸어 말해도 의미의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혹은 ‘그냥’, 아니면 ‘어쩌다가’와 같은 말로 더 간편하게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연히 읽게 되는’ 현상은 도서관을 갈 때보다, 인터넷 서핑을 할 때 압도적으로 많이 일어난다. 인터넷에서 생기는 ‘우연’이라는 현상의 기저에는 인터넷이 사용하는 특정한 언어가 있다. 정확하게는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이하 WWW)이 규약하고 있는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 때문이다. HTML을 풀어서 설명하면 대략 ‘하이퍼텍스트가 표시(마크업)된 언어’ 정도가 된다. 그렇다면 하이퍼텍스트와 마크업 언어는 어떤 관계인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단 마크업 언어가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마크업 언어는 ‘정보의 구조를 표현하는 언어’이다. 정보의 구조를 표현한다는 것이 어렵고 현학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간단히 이야기해서 책에 밑줄을 표시하는 것도 마크업의 일종이다. 다양한 자료가 있는 상태에서 주요한 정보를 중심으로 추리는 것이 마크업의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해, 선별할 자료들의 관계들을 ‘마크’할 수 있게 규정한 언어이다. 그렇다면 하이퍼텍스트는 무엇인가? 하이퍼텍스트는 노드와 링크로 구성된다. 노드를 텍스트로, 링크를 노드 간의 통로로 가정한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하이퍼텍스트는 텍스트와 텍스트를 통로로 연결한, 텍스트의 범주를 초과하여 더는 텍스트라 부르기 힘든 ‘초월텍스트’이다. 하이퍼텍스트와 마크업 언어는 초월 이전의 텍스트를 주지 않는다면 관계할 수 없다.

규약은 서사 아닌 공백

 WWW가 HTML로 규약을 정하고 있는 만큼, 인터넷은 다양한 정보가 관계하는 장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을 텍스트끼리 관계하는 장이라고 볼 순 없다. 텍스트가 문장이 모인 한 덩어리의 글을 이야기한다면 당연히 문장의 순서에 규약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텍스트는 선형적인 서사를 필연적으로 형성할 것이다. 이를테면 텍스트가 대화록이라 한다면, 그 텍스트는 ‘문→답’의 순서 안에서만 서사를 형성할 것이다. 그러나 하이퍼텍스트는 텍스트 간에 통로를 뚫어두어 답에 대한 답도 가능하게 만든다. 이렇게 메타적 서사를 형성할 수 있도록 연결을 돕는 것이 하이퍼텍스트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러나 하이퍼텍스트 자체가 메타적 서사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진 않는다. 이는 독자 스스로 텍스트를 연결해야 한다는 말인데, 많은 이들이 여기서 실수를 범한다. HTML이 온라인 규약이라는 것을 잊고 정보와 정보 사이를 텍스트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HTML이 서사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한다고 성급하게 결론짓는다. 그러나 HTML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어진 자료에서 추출한 정보들의 관계를‘마크’한다. HTML은 규정을 통해 일정한 간격(digit)을 짓고 공백을 형성한다. HTML로 인한 매체의 변화는 이 공백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인터넷이 보급된 이후 영상산업에 가장 직접적이고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넷플릭스의 등장일 것이다. 넷플릭스는 본래 메일을 통한 온라인대여서비스를 제공하였으나, 2013년에 론칭한 오리지널 콘텐츠 <하우스 오브 카드 House of Card>(이하 H.C)가 큰 반향을 일으키며 영상업계의 ‘게임체인저’(Game Changer)로 급부상했다. 는 넷플릭스가 온라인대여서비스를 제공하며 축적한 사용자의 대여 경향과 흐름을 분석, 이를 키워드로 추출하는 작업을 통해 가공한 콘텐츠였다. 말하자면, 넷플릭스는 마치 HTML이 자료들을 ‘마크업’하듯, 사용자 개인들의 이용 흐름(flow)을 키워드로 ‘마크업’하여 만들어진 콘텐츠인 셈이다. 제각기 다른 목적에서 모여진 흐름을 키워드라는 ‘마크’를 통해 분절하여 공백을 만들고, 공백을 통해 개인적 맥락을 탈색시켜 재조립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는 사용자-하이퍼텍스트의 결과로 위치시키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는 마크로 인해 분절된 흐름을 영상으로 선형화하는 작업을 거쳤기 때문에 온전한 하이퍼텍스트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는 마크업을 통해 얻은 요소들을 옴니버스처럼 조립하고 담화화(Narrativerizing)하여 만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를 이해하려면 요소와 공백을 메울 때 일어나는 이야기(Story)라는 현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옴니버스, 접촉의 시도

 모든 서사(Narrative)의 기저에는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를 통해 무언가를 재현하는 것은 인류의 오랜 행동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그만큼 수많은 방향으로 분화하며 스펙트럼을 넓힌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중심에는 두 개 이상의 사건(요소)을 하나의 사태로 파악하겠다는 이해방식이 있다. 여기에는 이야기의 재현이 갖는 존재적인 모순, 혹은 부조리가 있다. 재현의 가장 핵심적인 양태는 어떤 것을 ‘다시’(Re-) 한다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재현의 기초적인 관성은 원본을 추적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두 사건 사이’라는 공백을 요청하나 재현은 추적이라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궁극적으로 공백을 없애고자 하는 목적을 갖는다. 결국, 이야기와 재현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 사이에 끼어드는 것이 주관이다. 서사는 주관이 이야기와 원본을 어떻게 합의시키고 설득할 것인지 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옴니버스는 만약 이야기가 주관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모두 담을 수 있다면, 이야기가 재현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 시작된 서사의 한 형태이다. 비트겐슈타인(Ludmig Wittgenstein)의 말을 빌리자면, “세계는 사례들의 총합”이라는 관점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서사의 형태가 옴니버스라 할 수 있겠다.
 옴니버스는 ‘All’을 뜻하는 라틴어 ‘Omnis’의 여격 복수형으로서, ‘모두를 위한 것들’ 정도의 형용/명사였다. 여기서 오늘날 많은 사람을 실어 나르는 탈것(Vehicle)을 지칭하는 버스가 나왔고, 1835년에는 미국 의회의 법률제정 용어로 쓰이며 ‘다양한 경우에도 적용되도록 디자인된 법안’을 일컫는 법률용어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문학에서는 다수의 화자가 특정한 주제를 전달하는 서사의 한 방식을 지칭하고 있다. 그만큼 옴니버스의 가장 핵심적인 서사는 다양성을 한곳에 담는다는 데 있다. 따라서 서사로 다른 일화들을 하나의 양태로 묶는 것이 옴니버스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이를테면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가 더블린과 관련된 15개의 단편을 묶어 출판한 『더블린 사람들 Dubliners』(1914)은 단편적 서사들만으로는 이야기를 모두 이해할 수 없다. 표면에 드러난 내용보다 일화의 진행 양상에 주목했을 때, 제임스 조이스가 파악했던 타락하고 마비된 더블린의 단면을 이해할 수 있다. 15개의 일화는 서로 큰 상관없이 일정한 공백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나 첫장부터 끝장으로 이동하는, 책이라는 매체가 가진 고유의 진행 흐름을 십분 활용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는 규약을 통해 공백을 생성하는 HTML의 환경을 이해하고, 사용자가 플랫폼 안에서 그리는 개인적인 궤적을 키워드로 분절하여, 앞에서 뒤로 흐르는 영상이란 매체의 진행 흐름으로 번역한 결과물이다. 넷플릭스는 파편화된 이용자들의 맥락을 영상이라는 탈 것에 집어넣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은 흩어지고 모이며 새로운 개체가 탄생하는 것이다. 가상공간에서 시작된 가상의 흐름이 콘텐츠로 새롭게 개체화하기까지, 옴니버스는 궤적의 번역론이었다. 한편으로는 인터넷 환경에서 우연히 읽게 된 흐름을 추적하여 새로운 원본에 도착하기까지, 옴니버스는 인터넷 플랫폼과 영상매체를 이어주는 탈것이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여전히 키워드를 콘텐츠제작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오직 파편만이 진정성의 흔적을 띤다”(Jean Luc Godard)는 시대에, 어쩌면 옴니버스는 원본이 손상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매체가 흘린 파편을 주워가는 접촉의 시도인지도 모른다.


이 현 재 / 영화평론가·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