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3호 테마비평: 번역의 정치] 번역의 정치, 매체로서의 언어

정치적 매체로서 언어

 번역이 단순히 기계적으로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그 피상적 뜻을 옮겨놓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번역을 통해 문명이 생동한다”1)는 구절은, 번역이 없었다면 문명의 교류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그만큼 발전을 이루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파스테르나크가 셰익스피어 비극의 번역가였고, 루쉰이 정치적 휴지기에 학습을 위해 열심히 번역을 했다는 점도 번역이 갖는 위력을 증명해 준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이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당대의 민족주의적 분위기 속에서는 물론, 지금도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힘들다.
 사실 우리가 활용하는 ‘언어’ 자체가 다분히 의식적인 행위라고 할 때, ‘번역’은 그 발화되고, 도착한 시공간의 정치적 상황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실천이 된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번역한 자막 해프닝은 때로는 번역이 얼마나 엄중한 정치적 행위가 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생생한 예시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해방 이후 현민 유진오가 헌법 초안을 작성하면서, 북한이 먼저 전유했다는 이유로 헌법의 주체를 “인민”에서 “국민”으로 바꾸어 적었다는 사실은 당대를 연구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People”의 번역어인 “인민”과 “국민”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는 그리 적은 것이 아니다. “人”이 먼저 연상되느냐, “國”이 먼저 연상되느냐에 따라, 정치체에 대해 발휘될 수 있는 상상력의 범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진오는 간발의 차이로, “인민”이란 단어를 북한에 빼앗긴 상황을 무척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 엠 핸슨, (1947,10), 「조선의 민주주의. 3」, <새살림>, 軍政廳 保健厚生部 婦女局(군정청 보건후생부 부녀군)
(c) 필자제공

번역에 따라 달라지는 단어(언어)의 의미

 해방은 일본어가 아닌 소련어와 영어를 새로운 권력의 언어로 등장시킨다. 그러면서 탈식민 과정에서 ‘번역’은 가장 긴급하고 절실한 정치적 행위가 된다. 당대 대중들에게 어떤 정치적 이념을 번역하여 전달하는가는 새로운 통치주체들에게 사활을 건 문제였기 때문이다. 당대 모든 주체들의 열망은 새로운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고, 이에 대한 열망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라는 정치 이념을 뛰어넘어, “민주주의”라는 키워드를 전유하기 위한 치열한 각축전 으로 진행된다. ‘인민’이란 번역어처럼, 번역 실천은 속도전의 문제였다. 그 안에서 좌파는 인민민주주의, 진보적 민주주의, 중도파는 사회민주주의, 우파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수식어를 바꿔가며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증명하려고 애썼다. 이처럼 다양한 ‘복수의 민주주의’란 기표의 존재는, 이 시공간이 치열한 이념의 전쟁터라는 점과 더불어 역으로 당대가 다양한 지향들의 공존이 가능했고, 모두가 자유롭게 사상적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었던 시기라는 점을 증명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민주주의와 관련된 하위 범주인 “People”이란 주체의 번역어가 각축한다. 초기에 “인민”은 좌우파 모두에게 보편적인 민주주의 정치체의 수행 주체라는 일반적인 의미의 번역어였다. 그러다가 앞서 소개한 대로, 각축을 거쳐 북에 서는 “인민”, 남한에서는 “국민”이란 의미로 정착된다. 식민지 시대 “(국민)황국신민”의 대항체이기도 했던 “시민”은 해방 이후에는 오히려 좌 · 우파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이는 당대가 그만큼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다는 점을 알려 준다. 또한 여기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은 정치적 행동체, 복수의 의미로서의 “People”의 번역어이다. 이는 초기에는 “군중(대중)”으로 번역되기도 했지만, 대구 10월 항쟁 등을 거치면서 점차 “폭도”라는 의미로 변질된다. 점차 미군정에 의해 당대 정치적 행위의 통제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며 한국전쟁 시기를 지나면서 집단 주체에 대한 번역어는 더욱 강력하게 통제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와 검열과 저항의 장으로서 번역

 에드윈 젠러는 1950년대 미국문화와 번역의 의미를 통찰하면서 “번역은 기존 체계의 규범을 타파하려는 투쟁에서 문화적인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김기림이 1930년대 점차 군국주의로 치달아가는 시기 ,“시민”이라는 번역어로 반제 국주의적 세계 연대를 꿈꾸었던 것처럼, 해방 직후 모더니스트들에게 “People”은 “인민”과 “국민”이 아닌, “시민”으로 번역될 기호였다.
 그리고 해방 이후 최고의 저항적 지식인이자 시인이었던 김수영이 번역가였던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에게 번역 텍스트는 창작된 시와 산문과 비등한, 하나의 중요한 발화 텍스트였다. 그는 생계를 위해서 번역 작업을 맡기도 했지만, 스스로 학습을 위해서 영어 문헌을 뒤져가면서 번역 거리를 찾아 다녔다. 그 결과 그가 수행한 번역은 그의 말대로 ‘아무도 하지못한 말’을 할 수 있는 텍스트가 된다. 그는 1966년 스티븐 마커스의 소설론을 번역하면서 당대는 금기였던, “냉전 체제, 독재정치”를 언급하며, 자유로운 비평을 금하는 검열 체제에 대한 비판을 원작자의 입을 빌어 행한 바 있다. 이는 실제 시나 산문으로는 발언하기 힘든 수위의 표현이었다.
 또한 그의 대표적 시론인 ‘반시론’은 세계주의적 성향의 좌파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의 용어를 일본어 중역본에서 번역해서 가져온 것이다. 이 반시론에 대한 탐색은 그가 하이데거의 릴케론에 나오는 “노래는 욕망이 아니다”라든가 ,“참다운 노래가 나오는 것은 다른 입김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입김”이라는 시구를 번역하면서 획득한 심미적 인식의 결과이다. 김수영은 계몽적인 효용성을 지향하는 당대 참여시론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바타유의 『문학의 악』, 블랑쇼의 『불꽃의 미학』을 읽고 나서 얻은 성찰이 합쳐져 김수영의 『반시론』이 완성된다. 본래 프랑스 본 텍스트 “La litterature et la mal”에서 이 부분은 “La po ́esie est toujour en un sens un contraire de la poesie”라고 되어 있다. 이것이 일본어 원서에서는 ‘반시(反詩) 혹은 무시(無 詩)’로 번역되어 이를 김수영이 인용한 것이다. 여기서 반시는, 즉 특별한 의미를 생성하지 않으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획득하는 경지이다. 이는 표면적 의미를 지향하는 참여시와는 정반대의 입론인 셈이다. 또한 산문의 언어로는 이루어내지 못하는 시적인 언어만이 이루어낼 수 있는 경지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 경지를 지향하게 되면, 시어는 현실적으로 강요되는(억압된) 의미를 초월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낸다. 이는 쉽게 설명하자면, 김수영의 시 『풀』을 보면 된다. 그 시에서는 언어가 풀이 무엇인지, 혁명이 무엇인지 지칭하지 않고, 그의 미망 사이를 끊임없이 미끄러지도록 배치된다. 그러면서 독자로 하여금, 그 시는 풀과 인간, 혁명의 경지를 연상하게 한다. 그 혁명의 의미는 늘 현세적인 의미를 초월하기 때문에, 늘 아방가르드할 수밖에 없다. 김수영이 생각하기에 이것이 진정한 혁명시의 경지였다. 이렇게 그는 번역 작업을 통해 한국현대시문학사에서 가장 불온한 전위시론을 완성하게 된다. 나아가 그가 죽기 직전에 수행한 혁명 시인 네루다의 시 번역 『( 창작과비평』)은 당대 체제하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을 수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사상계』, 『창작과비평』등 당대 지식인 매체의 주체들은 기획된 번역기사를 통해 당대 지식장을 자신이 지향하는 이념태로 새롭게 구성해 나가고자 했다. 그들은 검열 체제와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수행하면서 당대로서는 파격적인 텍스트를 번역한다. 『창작과비평』이 창간호에 사르트르가 주관한 매체 『현대Les Temps modernes』의 창간사를 번역해서 백낙청의 권두언과 함께 실은 것은 이 매체의 지향점이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에 있다는점을 선포하기 위해서였다. 『사상계』의 경우, 63년 군부쿠데타가 실패로 끝나는 서사 구도를 가진 미국의 소설을 번역 · 게재하여 당대 군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수행한다. 이 서사의 번역은 당대 검열의 감시를 피해 가며, 『사상계』가 점차 저항적 매체로 성장하는 변곡점에 수행된 것이라 큰 의미가 있다.

매체로서 언어의 의미

 얼마 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가져다준 낭보는 영화 수준에 대한 한국인들의 자부심과 더불어 번역에 대한 관심을 불러왔다. 혹자는 훌륭한 자막 번역이 없었더라면, 이러한 여러 번에 걸친 수상의 쾌거를 이루어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를 보면 이제는 우리 모두 번역이 얼마나 고도의 지적인 작업인가를 인정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번역가들의 노고에 대한 존중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살펴본다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물론 번역의 불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번역이 없었다면, 전 세계가 함께 웃어가며, 영화 기생충이 전달하고자 하는 사회적 메시지에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짜파구리”에 대한 번역어가 얼마나 많은 고뇌의 시간을 거쳐 탄생했는가는 이제 두고두고 우리 역사에 회자될 것이다. 그만큼 우리 번역가들은, 단어 하나하나를 두고 지금도 밤잠 못 이루고 머리를 싸매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번역어가 얼마나 큰 정치적 위력을 갖는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각주
1) 루이 갈란티에르, 1969,『문명은 번역에 의해 생동한다-번역자의 고유한 역할』, <출판문화> 5(8), 대한출판문화협회.

박 지 영 /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