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3호 기자칼럼] 배달 불능 신문을 대하는 편집자의 마음가짐

 우리 신문은 발행될 때마다 매번 <대학원보 원고 모집> 광고를 싣고 있다. 다른 대학 신문사보다 높은 수준의 원고료를 책정하고 있지만, 원고를 보내오는 원생들은 거의 없다. 이번 호 14면엔 또 다시 <대학원보원고모집> 광고가 실리겠지만 편집위원들은 원생의 응답을 기대하며 광고를 편집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계속해서 광고를 내는가? 우리는 왜 계속해서 신문을 내는가?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 Bartleby, the Scrivener”)엔 어느 날 “하지 않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라고 말하며 자신의 업무를 모두 중지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골치 아픈 문제는, 업무를 중단한 그가 사무실에는 계속해서 출근한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그는 출근할 필요도 없는데, 어느 날부터 그는 사무실에 말 그대로 ‘거주’한다. 소설의 마지막엔 바틀비가 한때 ‘배달 불가 우편물 처리실’ (Dead letter office)에서 일했음이 그의 이상행동에 대한 단서로 제시된다. 수신인에게 닿지 못한 편지들을 처리하던 바틀비는 왜 어느 날 모든 일을 하지 않기로 선택할까. 아마 그는 정성스럽게 쓰인 ‘죽은 편지’들을 소각하며 어떤 허무감을 느꼈으리라. 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그가 단순히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분명 어떤 선호(prefer)를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단순 반복의 필사 업무를 하지 않음을 수행한다. 그는 쫓겨날 때까지 사무실에 상주하며 ‘하지 않음’의 무위(無爲)를 수행한다.
 관심 밖의 신문을 만들며 편집자가 대면하는 가장 큰 유혹은 적당한 아이템으로 적당한 신문을 만들자는 기계적 마음가짐이다. 석사 또는 박사과정의 짧은 기간 동안 장학금을 위해 일하는 대학원 신문사의 편집위원들에게 이 유혹은 더욱 거부하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마음가짐은 신문을 단순 반복의 기계 작업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 신문의 지면을 채우는 것이야 어떤 아이템이라도 끼워 넣을 수 있겠지만, ‘지금’, ‘여기’ ,‘대학원 신문이 할 수 있는 것’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죽은 종이뭉치들뿐이기 때문이다. 기계적인 필사 행위를 하지 않기를 수행하는 바틀비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까지 사무실을 떠나지 않는 것은, 정성스럽게 쓰여진 ‘죽은 편지’들을 애도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위와 같은 행위, 보이지 않는 독자를 위해 신문의 지면들을 정성스럽게 구성하는 편집자의 마음가짐에 이 칼럼이 조그만 애도가 될 수 있길 바란다.

허승모 기자 | suam3480@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