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4호 영화비평: <강철비2: 정상회담>(2020)] <강철비2: 정상회담>으로 되돌아보는 2008년 이후 분단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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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한국에는 ‘분단영화’라는 장르가 있다. 이 용어는 1980년대 중반 한 북한 관련 잡지에서 지금은 작고한 영화평론가 이영일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그는 당시까지 반공영화라고 불렸던 모든 영화들을 분단영화라고 새로 명명하여 분류하였다. 즉, 분단영화는 반공영화를 소급적으로 전유하면서 탄생한 장르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이전에 반공영화로 불린 영화들을 분단영화로 ‘덮어씌우는’ 문제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냉전의 막바지였던 1980년대 중반에 이미 반공체제는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적으로는 1987년 6·10항쟁, 국제적으로는 1991년 소련 해체로 인한 냉전 종식으로 종말을 고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단은 1945년 이래 75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의 냉엄한 현실이다. 분단영화가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동어반복적 의미라면 분단영화 역시 그만큼의 역사를 가진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 그것이 반공영화로 불린 것은 냉전시대 분단체제에서 반공 이외를 상상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불온’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공영화라는 낡은 명칭이 소멸되고 분단영화라는 명칭이 ‘공식화’된 것은 그만큼 탈냉전 시대의 변화된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보수정권에서 ‘촛불혁명’까지 분단영화의 경향

 그렇다고 해서 분단영화가 늘 냉전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강철비2: 정상회담>(이하 <강철비2>)의 오프닝 장면에서도 나오듯이 한반도는 세계적 냉전 종식에도 여전히 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운 곳이다. 분단영화만큼 한반도의 국내적·국제적 정세변화의 영향을 받는 장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분단영화의 매력이기도 하다. 분단영화에는 그 시대 남한 정권의 대북정책과 분단·통일에 대한 대중의 의식·지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탈냉전 시대 분단영화의 역사는 1990년대로부터 시작되지만 이 글에서는 2008년을 중요한 기점으로 삼는다. 그 이유는 이명박 정권이라는 보수의 재집권이 분단영화의 한 흐름에 제동을 걸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을 표방한 김대중·노무현 정권 이전의 보수정권 시기는 어떠했는가? 조정래 원작,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1994)이 우익집단으로부터 테러 위협을 당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이 시기는 민주화와 탈냉전의 도도한 흐름이 분단영화를 지배하고 있었다. 6·25전쟁을 반공적 관점의 애국주의로 재현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인식이 주류였던 것이다.
 2008년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남북한 정보요원들의 우정을 다룬 2009년 작 <의형제>는 햇볕정책의 여진이 남아있던 마지막 영화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듬해인 2010년은 어떤 분기점이었다. 이 해에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이 있었다. 북한 군인들이 2002년 월드컵을 배경으로 남한팀을 응원하는 <꿈은 이루어진다>(2010)는 말 그대로 시대착오적인 영화가 되었다. 대신 1970년대 <증언>(1974), <낙동강은 흐르는가>(1976)처럼 6·25전쟁을 북한의 패륜적인 원죄로 재현하는 영화 <포화 속으로>(2010)가 등장했다. 물론 이 영화는 제작 규모에 비해 그리 좋은 흥행성적이라고 볼 수 없는 300만 조금 넘는 관객을 기록했을 뿐이다. 그러나 흥행기록보다 중요한 것은 거의 반공영화의 부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영화의 시각이었다. 6·25가 대중영화 속에서 다시 반공주의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2010년 이후 분단영화는 크게 두 방향으로 나아갔다. 전쟁·군사영화 경향과 첩보영화 경향이 그것이다. 냉전 시대 반공영화의 양대 하위장르 역시 전쟁영화와 간첩영화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여기서 쏙 빠진 것이 코미디 경향이다. 햇볕정책이 정부 기조였던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에는 <간첩 리철진>(1999) 이후 <휘파람 공주>(2002), <남남북녀>(2003), <동해물과 백두산이>(2003), <그녀를 모르면 간첩>(2004), <간 큰 가족>(2005) 등 분단 소재의 코미디가 또 하나의 하위장르를 형성했었다. 코미디의 가벼움과 풍자성이 웃을 수 있는 여유로움에서 온다면, 앞서 말한 <꿈은 이루어진다>는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렸던 것이다.
 전쟁·군사영화 경향은 <고지전>(2011), <알투비: 리턴 투 베이스>(2012), <연평해전>(2015), <서부전선>(2015), <무수단>(2016), <인천상륙작전>(2016) 등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한국판 <탑건 Top Gun>(1986)을 꿈꿨으나 ‘폭망’했던 <알투비>와 저예산 B급영화에 가까운 <무수단>을 논외로 하면, <고지전>, <서부전선> 대 <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을 대척점에 놓을 수 있다. 전자는 반전(反戰)주의(<고지전>)와 화해·협력(<서부전선>)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 얼어붙은 시대의 값진 성과였다. 그러나 상업적 승자는 후자였다. <연평해전>은 600만, <인천상륙작전>은 700만을 ‘동원’(말 그대로 국가적 동원에 가까웠다. 특히 <인천상륙작전>에 투자한 KBS는 밤낮없는 홍보 방송을 내보냈다.)하면서 소위 ‘국뽕영화’의 대미를 장식했다.
 첩보영화 경향은 적어도 장르적으로는 <의형제>의 성공이 거둔 파생적 성격이 강했다. 특히 북한 요원이 가공할만한 ‘하드 바디’를 가진 인간병기이면서도 북에 두고 온 가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남한 혹은 해외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설정이 그랬다. 2013년에 이런 영화들은 절정을 이루었다. <베를린>, <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 <용의자>가 그것이다. 2016년 말~2017년 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이른바 ‘촛불혁명’ 이후 분단영화는 또 한 번 변전을 거듭한다. 사실 완전한 변전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한 감이 있다. <공조>(2017), <강철비>(2017), <공작>(2018), <PMC: 더 벙커>(2018), <백두산>(2019)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2013년의 첩보영화들과 완벽하게 단절된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2013년의 첩보영화들이 남북 간의 우정보다 대결 구도에 더 치중했다면 2017년 이후 영화에서 남북한의 경찰, 정보원, 군인들은 확실히 남성 간의 우정 혹은 동류의식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보수정권 초기 <의형제>가 마지막으로 뿌려 놓은 ‘형제 간 우애의 씨앗’이 다시 피어난 것이다.

급변하는 현실에 뒤처진 영화의 운명

 그렇다면 <강철비2>는 어디에 위치하는가? <공조>, <강철비>, <공작> 등이 남북 간의 우정과 화해·협력을 다룬다 할지라도 그것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이전에 기획된 영화들이다. 또한 국가 고위층과 그들의 권력 관계가 주요하게 재현(<강철비>, <공작>)된다 할지라도 최고권력자들은 조연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강철비2>는 남한의 대통령(정우성),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위원장(유연석), 그리고 미국 대통령(앵거스 맥페이든)까지 가장 중요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것은 명백하게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산물인 것이다. 문제는 지난 2년 동안 너무나 급박하게 변화해 온 한반도의 상황이다. 완전한 핵포기를 주장하는 미국과 ‘핵주권’을 일부 포기하는 대신 국제적 제재를 풀어줄 것을 요구하는 북한, 그리고 둘 사이에서 중재자를 자처한 남한의 현실이 영화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다른 것이 있다면 핵무기 포기와 평화체제 수립에 반발하는 북한 내 강경파의 쿠데타로 인해 세 정상이 핵잠수함에 감금되는 것인데, 여기서부터는 <크림슨 타이드 Crimson Tide>(1995)나 <유령>(1999)같은 ‘잠수함 영화’의 패턴을 따른다. 잠수함 내에서는 호위총국장(곽도원)을 위시로 한 쿠데타 세력을 제거해야 하고 잠수함 밖에서는 일본의 잠수함 폭파 위협으로부터 세 정상을 구해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잠수함 액션 장면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이자 백미이다. 적어도 시각적으로는 그렇다. 한국의 CG기술이 여기까지 왔구나 절감하게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현실에서 북한과 미국이 틀어지면서 영화 속 평화체제 구축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허망하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흥행에서 천운으로 작용하는 타이밍이 도와주지 않은 것이다. 또한 잠수함 액션을 위해 일본과 중국까지 끌어들여 한바탕 ‘핵놀음’을 하는 것은 나아가도 너무 나아갔다. 거기에 사족처럼 평화체제의 의미를 남한 대통령의 연설로 전달하는 것 역시 너무 직접적이라 낯간지럽다. <강철비2>는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영화를 바보로 만드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정영권 | 동국대학교 대학원 영화영상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