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4호 인문학술: 정체성 ①정체성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 자신에게 되묻는다. 만약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에 본지는 이번 호를 시작으로 정체성을 여러 관점을 통해 학술적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그 시작은 정체성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이다.

현대사회와 정체성의 중요성

 정체성이라는 개념은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된다. 국가 정체성이나 민족 정체성이라는 표현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정체성은 특정 집단에 대한 소속감과 동일시를 나타낸다. 동시에, 성 정체성처럼 개인 내의 특정 영역에 대한 주체적 선언을 가리키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정체성은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 다시 말해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자기규정을 의미한다. 문제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모든 대답이 곧 정체성은 아니라는 것인데, 바로 이 지점이 정체성과 자기개념이 구분되는 지점이다.
 자기개념이란 사회적 역할, 선호, 가치 등을 포함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모든 답변을 말한다. 필자를 예로 들면, 필자는 심리학 교수이고, 누군가의 남편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글쓰기를 좋아하고, 여행하는 것을 썩 즐기지 않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이런 자기개념들은 분명 자신에 대한 중요한 정보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평면적으로 나열된 특징들 하나하나가, 혹은 그 합이 정체성은 아니다. 정체성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답변 중 자신을 핵심적으로 잘 드러내는 동시에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답변, ‘이것이 바로 진짜 나’라는 느낌을 주는 답변이다. 따라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와 같은 답변은 자기개념일 수는 있어도 정체성이 될 수는 없다.
 정체성이란 자신에게 중요한 일이 무엇이고 의미 있는 일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 삶의 방향에 대해 결단을 내린 정도이다. 이러한 정체성의 정의를 살펴보면,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크게 두 가지 과정이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자신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이해하기 위해 자신에 대해 탐색하는 과정이고, 둘째는 탐색의 결과에 맞춰 자기 삶의 방향에 대해 결단을 내리는 과정이다.
 정체성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제임스 마샤는 탐색과 결단의 여부에 따라 개인의 정체성 발달 정도를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체성 획득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탐색한 끝에 삶의 방향에 대해 결단을 내린 상태이다. 정체성 유예는 자신에 대한 탐색이 활발히 진행되고는 있으나 아직 결단을 내리지는 못한 상태이다. 정체성 폐쇄는 자신에 대한 탐색은 진행되지 않았으나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 주변 사람의 영향으로 삶의 방향에 대한 결단을 내린 상태이다. 마지막으로, 정체성 혼미는 아직 자신에 대한 탐색도 결단도 없는 상태이다.

(표) 한국인과 미국인의 정체성 발달 단계별 분포

 이렇듯 정체성 발달이 자신의 핵심적인 가치를 추출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파악하는 과정이 요구되기 때문에, 정체성 발달은 추상적 사고 능력이 갖춰진 후에야 비로소시작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청소년기에 시작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표)는 정체성 발달이 활발히 이뤄지는 이십대를 대상으로 정체성 발달 정도를 구분한 결과이다. 비록 연구가 행해졌던 시기나 참여자들의 인구학적 특성 등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표에서 제시된 현상은 명확하다. 한국의 이십대는 미국의 이십대에 비해 정체성 획득 상태에 있는 사람이 적고 정체성 폐쇄 상태에 있는 사람은 많다는 것이다.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이 아니라, 사회나 부모가 기대하는 대로, 명문대학 입학과 대기업 취업을 위해 매진하고 있는 한국 청년들의 자화상이 표에 잘 드러나 있다.
 비록 오늘날 정체성 형성이라는 발달 과업이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인류 역사의 대부분에서 정체성은 그리 중요한 주제가 아니었다. 태어나는 순간 자신의 정체, 즉 신분이 이미 정해져 있고 각 개인은 그 신분에서 요구되는 것들에 맞춰 사는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화와 민주화로 대변되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신분적으로 평등하게 태어나고, 교육을 통해 원하는 직업을 추구할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의무가 없다는 것은 뒤집어 보면 자신의 정체성이 외부로부터 주어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현대인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만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현대사회의 특징은 뷰카(VUCA), 즉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으로 요약된다. 이런 뷰카 사회에서 사회나 부모의 기대는 삶의 지향점을 제공하지 못한다. 지금 좋은 직업이 20년 후에도 좋을지, 아니 그런 직업이 남아 있을지 아닐지조차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좇아 그에 맞춰 사는 것은 불가능하고, 스스로 확립한 자신의 삶에 맞게 세상을 취사선택하여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생 이야기로서의 정체성

 앞서 사회적 역할 등의 자기개념은 진정한 자신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정체성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정체성은 어떻게 경험되고 표현되는 것일까? 정체성 형성에 있어 서사(narrative)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심리학자 댄 맥 애덤스는,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누군가를 알 때 무엇을 아는지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맥 애덤스에 따르면, 누군가에 대한 지식은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 영역은 성격 5요인으로 대표되는 기질적 특성이다. 성격 5요인 중 외향성은 타인과의 교류를 좋아하는 성향을 가리킨다. 신경과민성은 감정의 변화가 크고 예민하여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는 성향이다. 우호성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우호적인지를 가리키고, 성실성은 자기관리에 능해 맡은 바 책임을 잘 완수하는 성향이다. 마지막으로, 경험에 대한 개방성은 높은 호기심으로 새로운 체험을 즐기고 미적 감수성이 뛰어나며 상상력이 풍부한 성향을 일컫는다.
 유전과 환경이 인간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행동 유전학에 따르면, 성격 5요인은 유전에 의해 대략 50%가 결정된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강한 유전의 영향력 때문에 성격 5요인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상황적 맥락을 초월해 유지된다. 다시 말해, 성격 5요인을 포함한 기질적 특성은 언제 어디서든 쉽게 드러날 수 있는, 비교적 오랜 시간 변하지 않고 지속하는 개인의 영역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질적 특성이 우리가 누군가를 처음으로 만날 때 보통 제일 먼저 알게 되는 영역이다. 누군가와 몇 분만 얘기해봐도 우리는 그 사람이 말이 많은지, 걱정이 많은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지 등을 비교적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영역은 특징적 적응이라 불리는 영역으로 여기에는 동기, 목표, 가치, 애착 유형, 자기개념 등이 포함된다. 특징적 적응은 각자 처한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는지에 관한 것으로 시간과 공간이라는 맥락에 따라 그 내용이 변화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좋아하는 수업에서는 A+를 받고 싶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들어야만 하는 수업에서는 B 이상만 받자는 식으로 수업에 따라 목표는 다르게 설정될 수 있다. 특징적 적응과 기질적 특성은 서로 독립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기질적 특성이 서로 다른 사람들도 같은 목표를 가질 수 있다. 외향적인 사람도 내향적인 사람도 모두 교수를 직업적 목표로 삼을 수 있듯이.
 하지만, 앞서 언급한 두 영역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해도 타인에 대해 제대로 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 세상에 비슷한 성격에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내향적이면서 의사가 되고 싶은 수많은 사람 중 어떤 특정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왜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고, 어떤 마음으로 그 길을 걷고 있으며, 의사가 되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바로 그 이야기야말로 어떤 사람을 그 사람으로 만드는, 그 사람만의 독립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알 때 무엇을 아는가?’ 라는 질문에 답해왔지만, 이 질문을 통해 맥 애덤스가 실제로 묻고 싶은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 때 무엇을 알고 있는지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질적 특성에 대해 대체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입학이나 취업,경제적 성공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고,학생으로서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이런 단편적인 정보만으로는 자신에 대한 진정한 알을 이루었다고 볼 수 없다. 기질적 특성과 특징적 적응에 관한 정보들이 소재가 되어 자신이 왜 어떤 것을 추구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그래서 자신은 어떻게 살고자 하는지에 대해 성공적으로 서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답변을 찾았다고, 즉 정체성을 형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성격 5요인(The Big Five)

정체성이란, 자신에게 중요한 일이 무엇이고 의미 있는 일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 삶의 방향에 대해 결단을 내린 정도이다.

서사정체성의 연구 방법

 이렇게 인생 이야기를 통해 표현된 정체성을 서사정체성(narrative identity)이라고 부른다. 서사정체성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연구 참여자들에게 특정 이야기를 적으라고 요청한다. 어떤 학자는 인생의 최고점, 최저점, 전환점 등을 적으라고 요청하기도 하는데, 필자가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지금 자신의 모습에 이르게 된 결정적인 경험에 대해 적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서술해 달라는 요구도 포함된다. 많은 질적 연구들이 이런 식으로 얻은 소수의 글을 자세히 분석하여 그 안에서 어떤 현상을 찾아낸다. 하지만, 심리학에서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글을 수집한 후, 특정한 방식으로 코딩하는 과정을 거쳐 양적 방법론을 사용해 글들을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방식으로 코딩할지는 연구의 목적에 따라 다르지만,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이야기의 구조를 분석하는 방법은 이야기가 어떤 순서로 진행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삶에는 항상 굴곡이 있고, 삶이 얼마나 좋고 나쁜지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파동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적으라고 요청했을 때 어떤 사람은 오염구조(좋게 시작된 사건이 안 좋게 끝나는 구조)로 적고, 어떤 사람은 구원구조(안 좋게 시작된 사건이 좋게 끝나는 구조)로 적는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어떤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요구해도 공통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최저점에 대한 이야기를 적는 경우, 누군가는 어떤 긍정적인 사건이 어떻게 망가져 결국 인생의 최저점을 만들었는지 적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최악의 사건이 결국 어떻게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적기도 한다. 이야기의 구조를 연구한 여러 연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오염구조로 적는 사람은 구원구조로 적는 사람에 비해 삶에 대한 만족도와 자존감은 낮고 우울감은 높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인생 이야기 속에 어떤 주제가 포함되어 있는지를 분석하는 방법이 있는데, 특히 많이 다뤄지는 주제가 독자성(agency)과 융화성(communion)이다. 독자성이란 개인이 독립적인 개체로서 얼마나 성공적으로 살아가는지에 관한 것으로, 일을 잘하고 새로운 능력을 키우고 높은 지위를 얻는 것 등과 관련이 있다. 반면, 융화성이란 개인이 자신보다 큰 집단에 얼마나 잘 소속되어 있는지에 관한 것으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사람은 자신만의 몸과 마음을 갖고 있어서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동시에 가족, 사회, 국가 등에 소속되기 때문에 어떤 집단에 융화되어 존재한다. 이에 심리학자 데이비드 베이컨은 독자성과 융화성을 삶의 근원적인 두 차원으로 묘사했다. 관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야기 속에 독자성과 융화성이라는 주제가 잘 녹아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심리적 웰빙은 높고 우울은 낮았다.

정체성과 자존감의 관계

 마지막으로, 자존감 형성에 있어 정체성의 역할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자존감이란 자기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인지적인 판단과 자신에 대해 얼마나 좋게 느끼는지에 대한 정서적 판단으로 구성된다. 결국 자존감이 높다는 것은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 판단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사회에 자존감을 높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그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책들 역시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문제는 자존감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초한 방법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존감에 대한 초기 심리학 연구는 자존감의 수준, 즉 자존감이 얼마나 높고 낮은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높은 자존감이 삶의 여러 긍정적인 측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가설이었다. 2003년 미국 심리학회는 특별 전담팀을 마련하여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루어진 여러 자존감 연구를 분석하여, 이 가설의 진위를 확인하였다. 이 팀이 내놓은 결과는, 높은 자존감이 긍정적인 삶의 결과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찾기 어려운데, 그 이유는 높은 자존감이 연약한 자존감(fragile self-esteem)과 튼튼한 자존감(secure self-esteem)으로 구분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주변 상황이 좋을 때는 이 두 자존감 간의 차이가 그리 크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시험에서 낮은 성적을 받거나 제출한 프로젝트가 비판받는 등 외부로부터 부정적인 평가가 있는 경우, 연약한 자존감은 심하게 출렁인다. 그래서 최근의 자존감 연구는 자존감의 수준과 더불어 안정성을 고려한다.
 연약한 자존감과 튼튼한 자존감의 결정적 차이는 높은 자존감에 대한 근거 여부에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에서 자존감을 높이는 수단으로 자주 등장하는 방법이 맹목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 즉 하루에 몇 번씩 ‘나는 소중하다, 나는 최고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라는 식의 주문을 외우라는 것이다. 연약한 자존감은 이렇게 맹목적인 자기 사랑을 바탕으로 상승한 자존감이고, 그래서 높은 자존감에 대한 근거가 없다. 반면 튼튼한 자존감은 실질적인 삶의 경험, 즉 많은 성취와 좋은 대인관계에 기반한 자존감이다. 튼튼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자기 내부에 자신의 가치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외부 상황에도 비교적 견고하게 유지된다.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근거를 마련하는 데 있어 인생 이야기로서의 정체성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즉 과거에 겪었던 부정적인 경험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단점 때문이다. 전자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찾아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과거의 경험을 ‘성장’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집단 따돌림으로 힘든 경험을 했던 사람이 또 다른 피해자를 도와주기 위해 관련 분야의 상담가가 되고자 하는 경우, 자신의 어두운 과거가 자신을 상담가로 성장시켰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최저점에 관한 글을 쓰면서 그 경험이 결국은 자신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끝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단점의 경우는 그 중요성을 재평가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앞서 자기개념은 자신의 모든 특징이 평면적으로 나열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기개념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하나의 단점은 하나의 장점과 같은 무게를 지닌다. 하지만 정체성 형성은 자신에게 더 중요한 특징과 사소한 특징을 위계적으로 재구조화하는 과정이다. 자신에게 중요한 장점에 더 많은 가중치를 주고, 중요하지 않은 단점에 적은 가중치를 주는 과정을 통해 단점이 갖는 무게를 줄일 수 있다.
 결국 튼튼하면서 높은 자존감을 갖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고, 자신의 삶을 좋은 이야기로 서사할 수 있어야 한다. 심리학자 리처드 라이언과 커크 브라운은 이런 말을 했다. “자존감은 패러독스이다. 자존감이 필요한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고,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그것이 필요하지 않다.” 이 말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은 자존감이란 좋은 인생의 결과이지, 그 자체로 추구할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아서 자존감을 높이고 싶은 사람은 높은 자존감이 부러워 그걸 추구하지만, 막상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존감을 좇아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자존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 튼튼한 자존감은 저절로 생겨난다.


박 선 웅 /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정체성의 심리학』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