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6호 영화비평: <미성년>(2019)] 그렇게 어른이 못 된다

 몇 년 전 <남쪽으로 튀어>(2012)의 제작을 둘러싸고 말이 많았던 적이 있다. 주연배우 김윤석이 임순례 감독의 연출에 소위 ‘월권’을 행사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배우가 감독의 연출에 불만을 품거나 간섭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 경우 대체로 영화는 그 결과가 안 좋다. 감독이 누군가의 개입과 간섭 하에 만든 영화가 잘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러나 배우의 입장도 아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스타 권력에 기대서 전횡을 부리는 교만한 배우가 아니라면, 주로 영화 제작과 연출에 대한 나름의 식견과 자의식 있는 배우인 경우가 많다. 영화에 대한 열정과 욕심이 강한 이들 배우가 보기에 감독의 연출력과 현장 통제력이 기대에 못 미친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배우가 감독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모든 영화 현장이 재능 있고 카리스마 있는 감독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되는 것 은 아니다. 임순례가 좋은 감독이라는 것은 <리틀 포레스트>(2018) 등 그의 다른 필모그래피가 증명하지만 적어도 <남쪽으로 튀어>는 좋은 감독과 좋은 배우의 시너지가 발현되지 못한 예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배우들은 종종 자신이 직접 메가폰을 잡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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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그 무책임에 대하여

 김윤석도 그런 경우다. 그의 연출 데뷔작 <미성년>이 개봉한다고 했을 때 솔직히 큰 기대는 안했다. 그 난리(?)를 쳤는데 어디 얼마나 잘 만드나 보자 하는 심리가 더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하지만 개봉하고 난 후 여기저기서 영화가 잘 나왔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심지어 벌써부터 ‘올해의 데뷔작’이라며 신인감독 김윤석을 추켜세우는 문구도 있었다. <미성년>은 이런 평가가 결코 무색하지 않을 만큼의 영화적 완성도를 내보인다. 올해의 데뷔작일지는 모르겠지만 올해 상반기에 개봉한 한국영화 중 주목할 만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영화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주리(김혜준)와 윤아(박세진) 두 여고생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리의 아버지 대원(김윤석)과 윤아의 어머니 미희(김소진)는 불륜관계에 있고 미희는 임신까지 한 상태다. 주리는 어머니 영주(염정아)가 알아차리지 않도록 둘의 관계를 정리시키려 애쓰지만 영주는 이미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있다. 영주는 미희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았다 가 미희와 남편의 통화 장면을 보게 된다. 남편과 너무나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불륜녀’의 모습에 화가난 영주는 식당을 박차고 나온다. 그리고 오지랖 넓게 영주의 처지를 넘겨짚는 미희를 참지 못하고 밀어 조산하게 만든다.
 <미성년>은 무책임하고 어리석으며 결함 많은 어른들을 책임감 있고 의연한 두 소녀와 대비시킨다. 정말이지 이 영화에는책임감 있는 어른이 한 명도 없다. 그 극점에는 대원이 있다. 그는 ‘찌질함’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에서 가장 실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장면은 미희가 조산한 후의 병원 장면이다. 그는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아오지만 자신을 부르는 딸 주리가 있는 것을 보고 도망간다. 에스컬레이터 기둥 뒤에 숨어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이없음을 넘어서 어떤 측은함마저 느껴진다. 주리는 아빠를 부르며 쫓아가 보지만 그는 끈질기게 달아난다. 이 도망은 대원의 캐릭터를 정확하게 설명해준다. 그는 조산한 미희를 돌보지 않고 그녀에게서 도망간다. 미희는 대원을 포기하지 않고 그에게 희망을 걸어보지만 그의 무책임에 실망한다. 또한, 대원은 영주와 관계 회복을 시도하지만 거기에는 어떤 진정성도 없어 보인다. 아내에게 어떻게 해서 바람을 피우게 됐는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은 진심어린 참회가 아닌 사전 예행연습으로 이뤄진 대사 외우기에 지나지 않는다(명배우 김윤석의 ‘의도된 발 연기’라니!). 이에 더해 그는 친구가 운영한다는 펜션으로 도망치듯 떠나지만 그 곳에서 동네 양아치들에게 두들겨 맞고 차도 뺏긴다.
 아이를 낳은 후 돌볼 생각이 없어 보이는 미희는 어찌 보면 연민이 가는 캐릭터다. 열아홉에 윤아를 낳고 박복하고 신산한 삶을 살아온 그녀에게 대원은 진짜 ‘마지막 사랑’(휴대폰에 새긴 대원의 이름)이었을지 모른다. 산모수첩에 정성들여 태아 사진과 육아일기를 정리해 온 것을 보면 아이 역시 사랑해서 낳은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장래에 대해 그녀는 천진난만하리만큼 무대책으로 일관한다. 사랑이 때로는 책임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녀는 깨닫지 못한다. 돈이 필요해 찾아간 미성년 딸 윤아에게 신용카드를 팔려고 하는 아빠(이희준), 비교육적이며 무능하고 무책임한 선생님(김희원) 등 영화의 어른들은 ‘미성년’에 다름 아니다. 그나마 조산의 빌미를 제공한 자신을 자책하기도 하고 힘든 시기의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영주가 가장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그 역시 ‘어른인 척’에 가깝다. 영주는 병원비를 갚으려고 온 윤아에게 지금이 너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며 제법 ‘어른다운’(그러나 틀에 박힌) 조언을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주리나 걱정하라는 윤아의 더 어른스러운 충고다. 이 말에 영주는 쌓이고 쌓였던 감정을 눈물과 함께 쏟아낸다.

우리는 글렀으니 너희가 희망이다?

 반대로 두 소녀는 너무 어른스러워 당황스러울 정도다. 엄마가 충격 받을까봐 아빠의 불륜 관계를 제 선에서(?) 정리시키려는 주리도 그렇거니와 엄마가 낳은 아들을 제 힘으로 키우겠다고 나서는 윤아는 비현실적이리만치 의연하다. 아이들은 부모들을 원망하되 비난만 하지 않고 오히려 부모들의 허물과 실수가 낳은 결과를 자신들의 힘이 닿는 데까지 최소화하려 애쓴다. 그런 점에서 <미성년>은 오늘날의 ‘헬조선’을 만든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들은 무책임하고 어리석으며 미숙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면서도 이기적이고 탐욕스럽다. 반성과 자기성찰이 없는 이들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단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어른 아닌 어른들’을 미성년으로 그리고, 진짜 미성년인 두 소녀를 지나치게 어른스럽게 재현하는 것이 좀 석연치 않다. 어른들도 실수할 수 있다. 미숙할 수도 어리석을 수도 있다. 때로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해 거짓을 말하고 당장 실수를 모면하기 위해 도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반성할 줄 아는 어른이 영화에서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대신 그들의 그 모든 이기심, 실수, 어리석음, 허물을 온전히 아이들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고 불편하다. 실수하되 책임질 줄 알고, 어리석되 반성할 줄 아는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불편함은 상쇄되었을지 모른다. 우리 모두는 실수하고 어리석으며 약한 존재들이다. 그렇지만 늘 도망가거나 회피하지만은 않는다. 영화가 어른들을 이런 식으로만 재현하는 탓에 그 반대격인 아이들의 의젓함과 의연함도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건 마치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실패를 아이들의 순수로 가리려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현실은 더 시궁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궁창을 견뎌야 하는 아이들이 모두 주리와 윤아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진부하게도 ‘우리 세대는 이미 글러먹었으니 희망은 너희들에게 있다’고 말하려는 걸까?
 <미성년>은 연출 데뷔작으로서 일정 수준 이상을 성취한 영화다. 많이 거론하는 것처럼 배우들이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있는 캐릭터와 상황을 만들어 준다. 김윤석은 배우 출신의 감독으로서 배우가 가장 빛날 수 있는 부분을 끄집어낼 줄 안다. 특히 식당에서 불륜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지만 마음속에 비수를 숨겨 놓은 염정아의 내면연기나, 퇴원하기 전 대원과의 통화에서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직감하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으로 사근사근 되묻는 김소진의 연기는 탄식이 절로 나는 영화의 백미다. 하지만 무리 없는 만듦새와 뛰어난 연기에 비교해볼 때,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어른들과 아이들, 그리고 ‘어른다움’에 대한 태도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주제에 맞는 영화의 태도일진 모르지만 이 영화는 어른스럽지 않다.

정 영 권 /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