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5호 영화비평: <보건교사 안은영>(2020)] 처음 만난 유쾌 발랄 오컬트 세계, <보건교사 안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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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보다 스트리밍 서비스로 더 많은 영화를 찾아보게 되는 날이 이렇게 빨리 오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 2, 3년 동안 영화제와 극장들이 넷플릭스 영화에 대한 보이콧을 논하면서 갈등을 빚고 극장의 존속과 영화의 미래를 둘러싼 이런저런 말들이 오고갔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영화를 본다’와‘극장에 간다’가 꽤 먼 미래까지도 동일한 의미로 사용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극장은 갑작스런 위기를 맞닥뜨렸고 준비가 된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는 기회를 맞았다. 지금의 상황이 상영을 담당하는 극장과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들에게는 한정된 파이를 서로 나눠가지는 제로섬 게임을 요구하고 있지만, 관객들에게는 더 새롭고 더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지금 당장 극장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스트리밍 플랫폼이 극장이나 텔레비전과 같은 레거시미디어라면 주저했을 새로운 작품들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교사 안은영>도 그 중 하나다.

<보건교사 안은영>과 오컬트

 “나~는 보건교사다. 나를 아느냐? 나는 안은영” 넷플릭스의 꾸준한 광고 덕분에 몇 주째 라디오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이 중독성 강한 리듬이 흘러나오고 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도대체 어떤 작품인가? 객관적 정보로는 이런 것들이 있다. 정세랑 작가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그동안 <미쓰 홍당무>와 <비밀은 없다> 등의 개성이 강한 영화를 만들어왔던 이경이 감독이 연출했지만, 2시간짜리 영화가 아니라 여섯 편짜리 드라마다. 배우 정유미가 주인공 안은영을 연기한다. 주인공 안은영은 젤리라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단편적인 정보가 객관적인 사실을 담고 있긴 하지만 이야기나 창작자에 대한 정보로는 작품이 어떤 재미와 경험을 줄 것인지 추측하기가 쉽지 않다. 이를 위해 가장 유용한 정보가 있다면 그것은 장르일 것이다.
 장르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보건교사 안은영>은 지금 대중들에게 인기 있고 친숙한 다양한 장르의 조합물이다. 판타지, 미스터리, 슈퍼히어로, 학원물 등, <보건교사 안은영>을 설명하기 위해 가져올 수 있는 장르는 다양한데, 이 중 <보건교사 안은영>의 세계를 관통하는 장르를 하나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오컬트를 꼽겠다. 알록달록한 색감과 반짝이는 삼단봉을 든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오컬트라고? 가깝게는 한국영화 <검은 사제들>(장재현, 2015년), <곡성>(나홍진, 2016), <사바하>(장재현, 2019년), 더 멀게는 <엑소시스트>(윌리엄 프리드킨, 1975년)으로 대표되는 바로 그 장르 오컬트의 리스트에 <보건교사 안은영>을 올릴 수 있다고?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가 지배하거나 기이한 B급 코미디의 형식에 기대는 것이 보통인 기존 영화와 달리 유쾌한 분위기로 표현되고 있을 뿐,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현상에 기반을 둔 이야기라는 점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의 세계는 오컬트의 경계 안에 있다. 바로 이 점, 명랑 만화의 발랄함과 오컬트의 결합이라는 시도가 <보건교사 안은영>이 가진 독창성의 핵심이다.
 사실 이 독창성은 원작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시작한다. 안은영은 보통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죽은 사람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죽고 산 것들이 뿜어내는 영적 에너지가 물질화된 입자들이라 할 수 있는 젤리를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학생 때는 아무도 안은영의 짝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고 늘 이상한 아이 취급을 받았다. 안은영의 어린 시절은 전통적인 오컬트 영화의 세계처럼 어두웠다. 유일한 친구이자 짝이었던 강선이가 안은영에게 한 조언이 이것이다. “칙칙하게 가지 말고 달리는 모험만화로 가야 해. 다치지 말고, 유쾌하게 사람들에게 사랑 받으면서 살라고”강선이의 이 발상전환이 바로 <보건교사 안은영>의 세계가 가진 독창적인 개성의 토대가 되었고, 우리는 정말 새로운 오컬트 텍스트를 만나게 된 것이다.

<보건교사 안은영>이 장르를 이용하는 방법

 오컬트로서 <보건교사 안은영>의 또 다른 미덕은 오컬트 설정 자체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자연적인 상황과 안은영의 특별한 능력이 텍스트의 서사와 주제를 방향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긴 하지만, 사건화되는 오컬트적인 상황 자체와 그것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 그 이상의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오컬트적 상황은 억압된 타자나 시대의 은유로 확장되기를 거부하는 듯하다. 마치 안은영의 캐비닛을 가득 채우고 있는 특정 문화나 종교로 맥락화되길 거부하는 토템들의 집합처럼 텍스트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은 원인과 결과로서의 그냥 존재하는 것일 뿐 신화로서 의미화되기를 거부한다. 학교와 사람 주변을 떠도는 젤리는 그냥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고 그것으로 인한 사건 사고와 현상들 또한 그냥 벌어지는 것일 뿐이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는 그 모든 게 마치 사람이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듯이 존재하는 것일 뿐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에피소드 4의 옴잡이 소녀 백혜민과 안은영의 대화에 담겨있듯이 백혜민을 창조한 사람도 안은영을 창조한 어떤 초월적 존재도 없고, 아무도 그들을 구해주러 오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보건교사 안은영>의 오컬트 세계가 가진 또 하나의 특별함이고 그 오컬트 설정이 신화화되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다. 젤리의 존재와 옴잡이의 존재가 당연한 세계를 그려놓고 <보건교사 안은영>이 진짜 관심을 두는것은 그 설정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이다.
 여섯 편의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것은 결국 주인공 안은영의 이야기이다. 원치 않았지만 특별한 능력을 타고나는 바람에 그것에 종속된 세계를 살아야만 하는 안은영의 아픔, 갈등, 슬픔, 성장 이야기가 <보건교사 안은영>의 핵심인 것이다. 안은영의 갈등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다른 것을 위해(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닌 일을 위해) 쓸 수도 없다는 것이다. 나쁜 젤리들로부터 학생들을 구해주려고 열심히 애쓰지만 안은영은 그것을 즐겨서 하지는 않는다. 마지못해, 마치 숙제를 하듯이 어쩔 수 없는 의무감에 기대어 그 일을 해나가고 있다. 종종 작게 내뱉는 ‘씨발’이라는 욕과 애들이 빨리 졸업이나 해 버렸으면 좋겠다는 짜증 섞인 한숨이 안은영의 진심에 더 가깝다. 그런데 원어민 영어교사 매켄지의 등장으로 우리는 이런 심드렁한 태도마저도 사실은 대단한 결심이 있어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매켄지는 안은영과 다른 극에 서 있는 인물이고 안은영이 온 감각을 세우고 경계하는 인물이다. 안은영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매켄지는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번다. 아주 쉽게 꽤 큰돈을. 그리고 안은영도 그럴 수 있으면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비웃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그렇게 힘들게 살다가 사라질 것이라고. 그 전까지 몰랐지만 안은영은 탁월한 퇴마사이자 일종의 주술사로 그의 능력은 사람들의 욕망을 채워주고 큰돈을 버는데 매우 유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은영은 그런 고민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자신을 비웃는 매켄지에게 거창하고 도덕적인 연설로 자신의 가치관을 풀지도 않는다. 안은영에게 사람들을 돕는 것, 위험에서 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안은영은 그런 사람이다. 사람들을 돕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사람. 그래서 피할 수 없는 자신의 천성을 당해내기로 한 사람. 안은영이 본 투 비 히어로라면 그것은 안은영이 가진 특별한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타고난 성정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선택 때문에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오컬트 설정은 신화화되기를 거부하지만, 그 세계 위에 쓴 인간 안은영의 이야기는 그 밖의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의미 확장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하얀 가운을 걸치고 학교 이곳저곳을 기웃대는 이상한 보건교사 안은영으로부터 현실 세계를 살고 있을 법한 보통사람 영웅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고 나면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천성을 가진 사람들과 그들의 크고 작은 흔적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이 세상을 지금껏 버틸 수 있게 해주고 있는 흔적들 말이다. 명랑, 발랄 오컬트라는 세계를 만들어낸 <보건교사 안은영>이 마냥 낯선 인상만을 남기지 않고 익숙한여운을 주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갈 것은 이 드라마가 소설을 영상화하면서 갖추어야 할 상업성과 대중성의 측면을 영리하게 성취해냈다는 점이다. 소설에는 없는 설정들이 추가되었는데(예를 들어 ‘안정한 행복’) 이것에 기반을 둔 숨겨진 음모라는 미스터리는 드라마의 후반부를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음을 물론, 시즌2를 위한 손색없는 밑그림 역할을 해낸다. 장르의 경계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넓혀 놓으면서 즐거움을 선사한 <보건교사 안은영>의 시즌2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성진수 /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