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5호 기자칼럼] 정의로운 도둑이 되는 걸 허락해 주세요?

 정의(正意)란 무엇인가. 현대에서는 “편향된 주관이나 윤리에서 벗어나 최대한 공정한 입장에서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것” 정도를 가장 흔한 정의의 정치적 개념으로 본다. 그렇다면 사유재산제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의로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자신의 이윤 획득을 최소화하고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시장구조에서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여 재산을 축적하고, 자신의 재산 중 일부를 꾸준히 기부하는 사람일까. 혹은 걸어가다 떨어뜨린 지갑을 찾아 준 생판 모르는 옆 학교 학생일까. 단언컨대 정답은 없다. 물질적으로든 혹은, 어떠한 가치로든 결국 그 정의로 인해 이득을 얻거나 피해를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게 다수이든 소수이든.
 결국, 정의는 어떠한 ‘범주’에 가까운, 옳고 그름의 이분된 해를 도출할 수 없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인즉, ‘만인이 인정하는 정의’는 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수의 대중문화에서는 주인공의 절대적 정의를 내세워 독자들의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하지만 이는 작품 속 설정일 뿐 현실성은 거의 없다. 90년대 인기 만화영화 ‘천사소녀 O티’의 주인공은 작품 속에서 “주님, 정의로운 도둑이 되는 걸 허락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고는 부당하게 취득한 물건들을 훔쳐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녀는 그저 특수 절도범, 범죄자다.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의’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다양한 공부와 풍부한 경험을 통해 세상을 더 넓게 알고, 느끼며 고민하는 것으로 정의에 대한 견해를 정립하고 검토하여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정의’를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검토해봐도 도출된 그 정의가 옳다고 느낀다면 자신의 삶은 도출된 그 정의가 이끄는 대로 살면 될 것이다. “바르게, 아름답게, 정의롭게 사는 것은 결국 모두 똑같은 것이다”라고 말한 소크라테스처럼.
 하지만 당신이 도출해 낸 그 정의는 당신의 정의, 당신만의 정의다. 그 정의가 ‘만인이 인정하는 정의’인 양 내세울 필요는 없다. 선동할 필요도 없다. 당신의 정의가 타인의 정의와 상반된다면, 그는 당신의 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의 비극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다. 전 세계 불행의 원인을 유태인에게서 찾으려 한 히틀러가 품었던 정의처럼. 그러니 우리는 배우고, 성장하고, 성찰하자. 취업에 방향을 맞춘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이 아닌 자유로운 비판과 성찰을 통해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자. 그것은 결국 대학의 존재 이유이기도 할 것이니.


정은택 기자 | 2081897@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