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5호 리뷰: 화정박물관 <각자의 사정2>]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는 ‘춘화’

▲ 화정박물관 전시관 내부

 ‘제한된’이 붙은 모든 것은 우리의 중추신경계를 더 흥분하게 만든다.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춘화가 크게 쓰여 있는 방안으로 걸어 들어 가면서 괜히 누가 나를 보고 있진 않을까 주위를 기웃거리며 시국 탓으로 돌리던 마스크가 고맙게 느껴졌다. 난 무엇을 기대하고 이리도 부끄러운 것일까? 명백한 예술작품이지만 그 누구는 외설이라 치부하는, 그래서 더 아름다운 ‘춘화’를 화정박물관에서 만나본다.
 붉은 조명의 실내를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눈을 끄는 것은 해시태그(#)이다. 전시는 해시태그를 사용해 주제를 설명하며 공간을 구성한다. 그 중 안쪽 은밀한 공간 ‘소장자의 사정’(#개인적인)에는 중국의 <춘궁화접선>(春宮畵摺扇)이 전시되어있다. 개인적인 공간에서 즐길수 있도록 3면으로 구성된 부채는 오른쪽으로 펼쳤을 땐 양쪽 모두 미인도가 보이지만 왼쪽으로 부채를 펼쳤을 땐 한 면에는 춘화가, 다른 한 면에는 미인도가 나오는 신기한 마술 도구 같은 트릭이 숨겨져 있다. 숨겨진 면에는 8가지 자세로 관계를 나누는 남녀가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부채에서 그림을 넘어선 다른 것을 보았다. 부채 속 여성의 발은 남성보다 훨씬 작게 묘사되어 있고, 여기엔 실제 중국의 전족(纏足) 문화가 그대로 담겨 있다. 송나라 때 처음 생겨난 전족은 여자의 발을 어린 시절부터 헝겊으로 동여매거나 꽉 끼는 신발만을 신고 생활하게 하여 인위적으로 작게 만드는 문화를 말한다. 전통문화라는 이름으로 유지된 이 악습은 여성의 고귀함이나 노동력 확보, 성적 쾌감 등을 이유로 행해졌다는 가설이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당시의 여성 인권을 춘화를 통해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송나라 시대 유명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그의 시집에서 아무리 여성의 작고 아름다운 발을 찬양할지라도 우리는 <춘궁화접선>에 담긴 그녀의 주름지고 구겨진 발을 보고 전족 문화의 이면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춘화를 단순히 유흥을 위한 금지된 어른의 그림으로만 바라보아선 안 된다. 예술적 가치는 물론이거니와, 비주류이기에 가능한, 정제되지 않은 본래의 것이 더 많이 담긴 예술 작품이기 때문에 또 다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발견할 것이다.
 다음으로 전시장의 중앙 ‘장면 속의 사정’(#은밀한)에 전시된 12장의 채색판화인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다양한 사랑의 방식>으로 눈을 돌렸다. 가츠시카 호쿠사이는 일본 에도시대의 화가로 춘화뿐만 아니라 판화, 풍경화 등 다양한 작품을 그려냈다. 풍경화를 그리던 영향인지 그가 그린 일본의 춘화는 중국 춘화보다 묘사가 더욱 적나라하며 한눈에 보기에도 중국의 것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겨온다. 두꺼운 팔과 축 처진 배. 현대의 매력적인 몸이라고 묘사되는 운동으로 다져진 몸과는 완전 반대의 두 남녀가 그림 속에 있었다. 그 옆에는 한 쌍의 쥐가 관계를 나누고 있으며 고양이가 이를 빤히 지켜보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을 남녀는 눈치도 채지 못하고 둘의 관계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디에서도 ‘예쁜’ 부분을 찾아볼 수 없는 총체적 난국이다. 그럼에도 이 그림을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편안함이 온다. 욕구에 심취해 두 남녀가 오롯이 자신만의 우주에 갇혀 나체로 엉켜있는 그 모습이 다른 어떤 그림보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자연스러움에서 오는 아름다움은 그 어느 것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다양한 사랑의 방식 속 남녀에게서 너무나도 강하게 느껴졌다.
 춘화는 단순히 욕구를 담아낸 자극적인 그림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춘화에는 예술성은 물론이고 <춘궁화접선> 속 여성의 전족 문화나, <다양한 사랑의 방식> 속 열정적이고 붉은 사랑이 담겨있다. 처음 박물관에 들어올 때 주변을 기웃거리며 얼굴을 붉혔던 내 모습은 숭고한 예술작품을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로 여기며 오는 부끄러움은 아니었을까?

김혜원 기자 | hyensi07@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