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1호 영화비평: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 온기 가득한 성장 영화의 즐거움

▲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온기 가득한 성장 영화의 즐거움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일상을 깨뜨리는 상황을 마주하여 깨진 일상으로 복구하기 위해 애쓰고 그 결과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이야기. 이것은 주인공의 경험을 중심으로 영화의 구조를 설명하는 시나리오 작법서에 실린 대략적인 공식이다. 모든 영화가 이 공식에 다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 영화 혹은 오락 영화라 불리는 대부분의 영화 이야기를 이 공식에 대입해 보면 얼추 들어맞는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닌가? 이 공식에 숨어 있는 한 가지 전제가 없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 전제는 영화를 시작할 때의 주인공과 영화가 끝날 때의 주인공은 다른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중간에 주인공이 바뀐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이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이 다른 인물로 교체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주인공은 한 인물(혹은 한 그룹의 인물)이되 그 인물에게 내적이고 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간단히 말해, 영화가 시작할 때는 계단 밑 벽장에 사는 구박덩어리에 외톨이 아이였지만 영화가 끝날 때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유명인이자 아끼는 친구들을 가진 해리 포터가 되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인물의 변화는 인물이 살아가는 일상의 변화로도 이어진다. 그래서 엔딩의 일상은 겉으로는 동일해 보여도 영화가 시작할 때의 일상과 다른 일상이 된다. 바로 이 변화의 지점에 재미있는 시나리오의 핵심이 있다. 어떤 방향의 변화를 줄 것인가? 그 변화의 과정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보여줄 것인가? 그 변화 과정을 주인공과 함께 경험해가는 관객들에게 감각적, 정서적, 도덕적으로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래서 재미있는 영화는 설정이 아니라 과정이 재미있는 영화이고 좋은 영화는 인물의 변화에 주목하는 좋은 성장 영화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늘 성장할 기회를 마주한다

 성장이라는 말은 발전과 개선을 내포한다. 일상에서는 우리말‘철들다’,‘ 철나다’가 성장하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성장 소설이나 성장 영화는 10대 청소년이나 20대 초중반의 사회 초년생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라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많은 영화의 주인공은 나이에 상관없이 변화를 경험하고 그 변화는 대부분 성장으로 이어진다. 그 시작은 그들이 예상치 않게 마주한 상황이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주인공 이찬실(강말금)에게도 그런 상황이 닥친다. 영화 프로듀서 찬실은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 온 감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실직자 신세가 된다. 산동네 꼭대기 집에 방 한 칸을 얻어, 함께 일하던 스텝들의 도움으로 얼마 안 되는 살림살이를 머리에 이고 어깨에 져 막 이사를 마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고 지내던 배우 소피(윤승아)의 가사도우미가 일을 그만두는 바람에 소피네 집안일을 해주는 것으로 급한 생활비는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평생 좋아하는 영화 일을 하면서 살 줄로만 알았던 찬실에게 시쳇말로 현타가 오는 것을 피할 길은 없다. “아 망했다. 왜 그리 일만하고 살았을꼬?”돈도, 집도, 남자도 없는 현실에 대한 자각과 한숨이 뒤섞인 이 한마디가 말해주듯이, 일에만 빠져 살았던 마흔 살 프로듀서 찬실이는 일생의 위기를 마주하게 된다.
 위기에 닥친 주인공이 엉클어진 일상을 풀고 새로운 일상을 찾아나가는 방식은 영화마다 각기 다르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영화 전체를 가로지르는 큰 사건보다는 인물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주목하는데, 그에 따라 요약하면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다. 영화 프로듀서 일이 끊김 –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 후회 – 영화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결심 – 진심으로 하고싶었던 것이 영화라는 깨달음 – 새로운 자신의 영화 시작. 찬실이의 내면에서 이루지는 이 변화는 차곡차곡 쌓아올린 일상의 소소한 행동과 사건으로 외면화된다. 문득문득 현실 자각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그 순간의 인물보다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움직이는 모습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관념적인 추상화가 되기보다는 현실에 발붙인 구상화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영화가 획득한 현실 감각은 인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비현실적일 만큼 따뜻한 에너지와 갑자기 난입하는 판타지적 설정조차 관객들에게 납득시켜버리는 힘을 가진다.

평범한 일상을 나눈다는 것

 버렸던 영화 책을 다시 방에 들여놓기까지 찬실이에게 일어난 변화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그것은 잃었던 것의 회복이라 할 수 있다. 소피의 불어 선생님 영(배유람)은 찬실이가 잊고 지냈던 설렘과 외로움의 감각을 되살려내고, 이 영화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존재인 자칭 장국영(김영민)은 찬실이가 묻어두었던 꿈과 열정을 다시 일깨워준다. 해질녘의 한적한 공원에서, 사실은 그 감독 영화가 재미없었다는, 아버지의 숨겨두었던 진심과 위로가 담긴 편지를 읽을때, 찬실이 옆으로 하얀 속옷만 입은 한 남자가 유령처럼 지나간다.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찬실이는 집에서 그 남자와 다시 부딪히는데, 자신을 장국영이라고 소개하는 이 남자는 사실 찬실이가 묻어 두었던 영화를 향한 열정의 육화이다. 찬실이가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알아가는 계기이자 관객에게 인물 내면의 목소리를 객관화시켜 들려주는 장치로서, 그리고 영화의 재미와 개성으로서 이 장국영이라는 설정은 영화의 중요한 미덕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건강한 기운과 상투적인 해피 엔딩으로 보일 수 있는 영화의 엔딩을 관객이 수긍하고 이해하는데 더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주인 할머니와 소피 같이 특별한 서사적 계기와 상관없어 보이는 인물들이다. 장을 보고, 소피의 집을 청소하고, 주인 할머니와 콩나물을 다듬고, 언덕길을 오르내리고, 산책을 하면서 찬실이는 일에 파묻혀 있는 동안 소홀했을 법한 일상을 회복하고 그들의 소리 없는 응원 속에 꿈에 대한 확신을 회복해 간다.
 소피와 할머니는 갑자기 실직한 찬실에게 일거리와 머물 곳을 제공함으로써 찬실이의 일상 유지를 가능하게 해주는 사람들이다. 외적으로 볼 때 고용자와 피고용자, 집주인과 세입자라는 계약에 묶인 관계이지만, 그들은 계약 이상의 것을 찬실에게 준다. 찬실이 실직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배우 소피는 찬실이가 자기 집의 가사도우미 일을 하게 해준다. 아무리 친했던 사이더라도 일로 만난 사람을 가사도우미로 들인다는 것은 껄끄러울 법하다. 오히려 친했던 사이이기 때문에 더 망설여질 수 있다. 그러나 소피는 찬실이에게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을 제공하기로 한다. 가사도우미로 자신의 집을 찾은 찬실을 이전과 똑같이,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여느 가사도우미를 대하듯 하는 소피의 허물없는 태도는 아마 찬실이가 그 일을 하는 데 힘이 되었으리라. 소피의 행동이 의도된 것인지 그녀의 앞뒤 재지 않는 성격과 의리 탓인지 분명치 않지만, 삶을 도모하기 위해 가사도우미 일을 선택한 찬실에게 소피가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위기의 찬실에게 소피처럼 따뜻하고 현실적인 위로를 보내는 또 다른 사람은 주인 할머니다. 유난히 살갑지도 특별히 무뚝뚝하지도 않은 주인 할머니는 자신의 일상 한곁을 찬실에게 내줌으로써 힘이 되어준다. 닭백숙을 나눠 주고, 옆자리에 앉혀 콩나물을 다듬게 하고, 자신의 즐거움인 한글 공부를 나누는 것으로 할머니는 외로운 찬실이에게 따뜻한 온기를 더해준다. 소피나 할머니는 찬실이에게 특별한 것을 베풀지 않는다. 그들은 일상의 한 순간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큰 힘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주변에 두고 있는 찬실이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건강한 해피 엔딩

 할리우드식 해피 엔딩이 비판받는 이유는 비현실적인 낙관주의가 자칫 현실 도피를 초래할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피 엔딩은 어두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이자 빛이 되기도 한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엔딩이 닫힌 해피 엔딩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쉽게 정념에 휩싸이지 않는 인물들이 만드는 건강한 일상과 그들이 켜켜이 쌓아 올린 온기가 보는 이로 하여금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게 한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손전등을 들고 동료들과 어두운 산길을 내려가는 찬실이도 그 긍정의 기운에 힘입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이 영화에는 현실에 발을 디딘 평범한 사람들의 온기가 만들어낸 건강한 희망이 만들어내는 신뢰가 있다. 기분 좋은 여운 속에서 스크린 앞을 떠나게 된다면, 그리고 찬실이의 해피 엔딩을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영화가 관객에게 심어준 그 신뢰 덕분일 것이다.


성 진 수 /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