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1호 문화비평: 4차 산업혁명시대 종이책의 변화] 다시 생각하는 책의 가치, 또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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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샤오이스(Xiaoice)가 출간한 시집, 『햇빛은 창
문을 잃고』(Sunshine Misses Windows,
2017)

책은 진화를 거듭하는 미디어일까?

 책은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콘텐츠 플랫폼이 주도하는 초연결 시대에 부질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오래된 미디어 중 하나일까. 책의 형태를 띤 최초의 필사본 코덱스(codex)가 출현한 이후 2천여 년 가까이 책은 정보와 지식, 콘텐츠를 기록하고 담아 전달되는 최적의 미디어로서 역할을 수행해왔다. 2020년 봄,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를 격리시켜 도서관과 서점이 텅 비어가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전자책은 종이책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지식과 콘텐츠를 담아 전달하고 소통시키던 책의 역할은 새로운 기술적, 산업적, 사회적 환경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책’이라는 미디어는 급진적이며 근본적인 기술적, 사회적 변화를 현재 진행형으로 겪고 있다. 변화의 수준과 깊이가 혁명적인 이유는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이어지던 전통적인 미디어와 출판의 가치사슬(value chain)이 콘텐츠 창작, 생산, 플랫폼, 독자·사용자 등의 각 영역에서 다양하게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는 가치 네트워크(value network)로 바뀌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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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보영 시인이 운영 중인 ‘일기 딜리버리’

플랫폼 기반의 가치 네트워크의 변화

 크리에이터들은 플랫폼을 통해 전자책을 출판하거나 웹소설, 웹툰 플랫폼을 통해 직접 콘텐츠를 유통한다. 텀블벅, 와디즈 같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는 사용자들과 소통하는 관계를 형성하여 자금을 받고 창작과 출판을 함께 논의하며 진행하는 현상이 일상화되었다.
 전통적 출판 생태계에서 전문 저자들은 출판사와의 출판권 계약을 통해 창작하고 저술하는 방식으로 활동을 해왔다. 제4차 산업혁명 환경에서 전문 저자들이 창작, 저술한 콘텐츠는 종이책에서 POD 출판물, 전자책, 오디오북, 가상현실 콘텐츠, 증강현실 책 등으로 다양하게 가지를 뻗고 있다. 네이버와 다음, 레진코믹스, 문피아 등은 크리에이터들과 독자들이 참여하여 웹소설과 웹툰을 출판·유통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와 커뮤니티에서 활성화된 사용자들의 활동은 자신들의 관심을 끄는 주제의 창작활동을 위해 크라우드펀딩 참여와 커뮤니티적 관계로 기획과 집필을 지원한다. 그리고 펀딩 참여자들은 콘텐츠 결과물, 기념품, 관람, 참여 명단에 이르는 여러 방식의 펀딩 보상을 받는다.
 책 콘텐츠 수용방식에 결정적 변화를 가져온 기술 환경은 스마트 디바이스와 소셜 미디어의확산이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독자들은 출판사 및 저자들과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직접 커뮤니케이션하며 협력관계로서의‘소셜 미디어 동맹체제’를 형성하였다. 이 체제는 소셜 미디어 출판 플랫폼과 연계되며 SNS 관계처럼 참여와 이탈이 자유롭고, 다양한 관심과 이슈를 통해 온·오프라인의 유연한 연결 관계로 운영하는 사례를 만들어낸다.
 제4차 산업혁명 환경에서 독자들은 스마트폰과 사물인터넷기술을 사용해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와 지식을 적극적으로 찾고 구매해 확산시킨다. 더 나아가 독자들은 크리에이터들에게 투자하고 함께 기획하며 때로는 콘텐츠를 창작, 저술하는 존재로 변화하고 있다. 독자들은 단순한 매스미디어의 수용자이자 구매자에서 진화해, 출판 가치 네트워크의 전체 작동을 집합적으로 주도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저자와 독자들의 관계 활성화는 독자의 니즈와 협업에 기반한 소셜 커뮤니티를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시킬 수 있다.

파괴적인, 또는 창조적인

 전통적인 종이책 출판사 관점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기술혁신은‘파괴적’이다. 하지만 출판사와 서점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난 저자와 사용자가 콘텐츠를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형태로 공유 또는 구매해 즐길 수 있는 환경은 혁명적이다. 책의 진화도 종이책과 전자책을 넘어 웹소설, 웹툰, 오디오북, 웹 콘텐츠, 웹진 등 경계를 없애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는 N스크린 콘텐츠 출판이 현실화된 것이다. N스크린의 표준은 HTML5를 표준으로 한다. 전자책과 웹이 융합하고 분기하는 현상은 웹툰과 웹소설 출판의 활성화 트렌드로 드러나고 있다. HTML5와 모바일 디바이스의 특성을 살린 콘텐츠 성공 사례로서 분석한 웹툰과 웹소설은 전통적인 출판 장르인 만화와 소설을 뿌리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인터페이스를 사용자 환경에 적합하게 진화함으로써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조판 형식에서는 상하 스크롤링 방식을 선택하였고, 텍스트 독서에 취약한 청소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화자 아이콘을 제공하였다. 또한 독자와의 관계가 단절되어있던 전통적 만화, 소설과는 달리 댓글을 통해 독자와 저자는 인터랙션 할 수 있으며, 독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와 소설에 별점을 주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유, 확산할 수 있다. 독자들은 단순히 독자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화와 소설을 연재할 수 있어 적극적인 사용자 참여를 끌어낸다. 결국 웹툰과 웹소설은 작가 등용문인 동시에 강력한 콘텐츠 플랫폼으로 작동한다.

책의 미래를 여는 인공지능 기술

 인공지능이 책 콘텐츠의 생태계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예정된 미래다. 콘텐츠 플랫폼으로 진화한 서점은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인공지능 비서를 통해 독자들에게 책 콘텐츠를 안내한다. 또한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전자책이나 오디오북과 같은 형태로 판매·서비스하는 체계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사용자가 원하는 전자책을 읽어주는 아마존의 인공지능 기반 음성 인식 비서인 에코(Echo)가 그 사례다. 그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은 공공도서관에서 콘텐츠를 필요로 하는 사용자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을 주는 인공지능 사서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다. 인공지능 사서는 방대한 도서관 아카이브와 콘텐츠에 효율적이고 체계적이며 전문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도서관의 핵심 서비스가 될 수 있다.
 나아가 방대한 인터넷 자료를 기반으로 책 콘텐츠를 저술하는 인공지능 출판을 예견할 수 있다. 책의 구성과 논리적 체계를 알고리즘으로 지닌 저자로서 활동하는 인공지능은 사용자의 웹을 체계적인 지식 학습 도구로서 활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인공지능 출판은 공공부문 서비스로 포털사이트나 검색 사이트, 또는 출판사의 상품과 서비스로서 개발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구글 프랑스에 있는‘구글 아트&컬처 연구소’(Google Arts and Culture Lab, 아트 랩)는 인공지능과 예술장르를 교차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Art’라는 단어를 입력하자 인공지능은 다음과 같은 시를 한 편 지어주었다고 한다.
 “Our art is gone / This energy of birds and fountains borne”(우리의 예술은 떠나가고 새와 분수의 에너지가 태어났다)

미래의 책을 위하여

 매우 낯설지만 새로운 출판 사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문보영 시인이 운영 중인‘일기 딜리버리’다.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문보영 시인이 쓴 글들이 이메일로 독자들에게 전송된다. 또한 이랑 작가가 운영하는‘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라는 구독 시스템은 30인의 필자들이돌아가며 글을 쓴다. 매월 한명씩 선정된 작가가 매일 한편의 글을 메일로 보내준다. 마지막 사례는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 서재이다. 작년 가을 밀리의 서재는 ‘Monster’를 주제로 송원평 외 10명의 선정된 작가가 참여하는 소설집을 기획했다. 이 소설의 특징은 밀리의 서재가 전자책 유통에서 나아가 테마 선정, 작가 선정 등 출판 기획부터 참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출판사의 미래는 무엇일까. 출판사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독자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다양한 형태의 책 콘텐츠를 기획, 출판, 유통하는 마이크로 플랫폼 전략 개발이 요구된다. 콘텐츠 플랫폼으로 진화한 서점은 온·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인공지능 비서를 통해 사용자에게 책 콘텐츠를 안내하고,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전자책이나 오디오북과 같은 형태를 판매하고 서비스하는 체계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는 다양하게 출현하는 창작과 생산 주체들과 어떻게 다양한 형태로 가지를 뻗고 융합되는 콘텐츠 출판을 주도할 것인가의 과제를 안고 있다(장용호 외, 2013). 가치 네트워크의 허브로서 출판사의 역할은 다양한 참여자들 또는 소셜 커뮤니티들과 개방적 협업을 주도하면서 종이책을 넘어서 콘텐츠를 출판하는 가치를 창출하는 데 있다. 종이책, POD, 이퍼브3.0, 오디오북, 가상현실 콘텐츠, 증강현실 책 등의 출판에서 편집자는 PD(product director) 역할과 서점·플랫폼에 대한 콘텐츠 에이전시 역할로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 병 훈 /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