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2호 학술대회취재: 한국고소설학회] 미래의 영웅을 기대하며

“영웅은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다.”

 ‘보통 사람’과는 다른 비범함과 문제 해결력을 보여 주는 인물이 바로 영웅이다. 영웅은 때로 내 옆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너무나 먼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기기도 한다. 사실상 현대의 영웅은, 과거에 향유되던 ‘구원자’의 모습보다는 일상의 모습에서 작은 도움으로 나타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될 영웅은, 막연하고 거대한 기대를 걸어 봐도 부응해 줄 수 있는 작품 속 인물이다. 가깝게는 영화의 ‘슈퍼히어로’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연구자들의 시선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 우리의 영웅소설이 누렸던 영광은 현대의 외국 영웅서사의 인기에 못지않았다. 비슷한 계열의 영웅서사라면, 우리의 것을 부각시키는 것이 더욱 좋지 않겠는가.
 지난 4월 25일, 한국고소설학회는 제128차 정기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영웅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중심으로, 영웅소설의 흐름이 현대에는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었나 고찰하는 것이 기획 발표의 목적이었다. 이례적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문제로 학술대회는 온라인에서 진행되었다. 타 학회에서도 이미 학술대회를 온라인으로 진행한 바 있어 최초의 사례는 아니었지만, 고전을 다루는 학회에서 현대적인 기술을 활용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연구의 장을 펼친다는 데에서 새로운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

고전의 세계관 구축하기

 ‘어벤져스’라는 명칭은 해당 장르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한 번쯤 들어 봤을 법하다. 자세한 내용은 모를지언정 일명 ‘슈퍼히어로’의 이야기임은 대부분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한때 박스오피스 1위를 몇 주째 차지하던 영화이기도 했던 어벤져스 시리즈는, MCU(Marvel Cinematic Universe)라는 세계관 아래에서 많은 콘텐츠를 양산해 내기도 했다.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고, 방대한 세계관은 지속성과 연속성, 확장성까지 갖출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계관을 국내 작품에서 찾아볼 수는 없나. <소대성전>, <유충렬전>, <금방 울전> 등을 평행한 선에서 함께 읽어 볼 방법이 있지 않을까. 국내의 고전 영웅소설들은 각 작품마다 세계관을 유사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이야기로 전체를 묶는 것도 불가능한 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한국인이라면 국내 고유 콘텐츠에 대한 욕심이 날 법하다. 춘향과 심청을 같은 작품에 등장시킨다거나 하는 소규모 공통 세계관은 현대 콘텐츠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위와 같은 고찰을 영웅소설에 적용시키고자 한 것이 이번 발표의 핵심이었다. 아래부터는 분류의 편의상 외국 세계관의 영웅을 슈퍼히어로, 우리 영웅소설의 영웅은 영웅으로 지칭하도록 한다.
 기조 강연을 맡은 송성욱(가톨릭대)은 “만약 <홍길동전>, <소대성전>, <유충렬전>, <이대봉 전>의 순서로 읽으면 어떤 독서 효과가 일어날까?”물으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와 대비하여 드는 예시가 MCU와 무협 세계관이다. 해당 사례들은 이미 성공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우리 영웅소설과의 차이점을 고찰함으로써 앞으로의 방향성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총 다섯 가지의 관점에서 MCU와의 비교를 전개한다. 첫 번째는 공간 설정의 문제로, 마블은 ‘평행우주이론’을 빌리는 반면, 영웅소설은 초월적인 천상계와 지상계의 이분법적인 구조를 따른다. 어차피 환상의 영역을 건드리고 있다면, 개별적인 초월 공간을 설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으로 인지될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영웅이 존재하는 세계의 문제이다. 슈퍼히어로는 사람으로서 사는 것과 영웅으로서 사는 것 사이에서 고뇌하고, 영웅은 인간 세상에 온전히 편입하여 살아간다. 영웅은 ‘영웅으로 사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으며, 고난을 그의 초인적인 힘으로 극복하곤 한다. 세 번째로 다루어지는 것은 적의 출현과 싸움으로, 사용하는 능력의 차이를 제외하면 유사한 부분에 해당한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문제는 슈퍼히어로의 이중적 자아에 기인한 것으로, 슈퍼히어로는 계속하여 본인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규정하고자 한다. 오히려 인간보다 더욱인간적으로 살고자 하는 슈퍼히어로들은 사회의 시선을 신경 쓰고, 사랑을 얻기 위해 인간으로 행위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가 히어로로 살아야 하는 순간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반면, 영웅은 처음부터 인간계에 편입되어 있기 때문에 본인의 정체성이 아닌 국가와 사회의 문제에 대해 더욱 고민하게 된다. 사랑에서의 갈등은 인간적 고뇌가 아닌 혼사 장애에서 드러나는데, 이는 곧 영웅이 겪게 될 1차 시련과 조력자를 형성하기 위한 발판으로 쓰이기도 한다. 따라서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성찰하는 대상에 있다. 슈퍼히어로가 본인을 문제 삼는다면, 영웅은 본인 바깥의 질서를 문제 삼아 해결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비교를 통해, 연구자는 우리의 영웅소설이 독자적인 특성을 가지는 것을 보여 주고, 오히려 영웅소설이 우리 정서에 알맞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소대성전>, <유충렬전>, <최고운전>, <장풍운전>, <금 방울전> 등 유사한 세계관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즉 이미 존재하는 영웅소설을 통해 우리만의 동양적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도 미래에 대한 가능성 중 하나라는 것이다.

▲ 영웅 홍계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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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영웅서사

 만약 과거의 것을 그대로 활용한 영웅서사가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면, 현대에는 영웅소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승은(한림대)은 웹툰 <신의 탑>에서 영웅서사의 지속과 변주를 발견한다. 영웅서사는 다양한 문화콘텐츠에 내재되어 전승되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세 가지로 <신의 탑>에서 발현되는 영웅성을 요약한다. 첫째, 모험을 통해 성장한다는 점, 둘째, 고난 극복을 통한 성취가 있어 ‘고난-극복-성취’의 과정을 거친다는 점, 셋째, 선악의 대립이 뚜렷하다는 점. 연구자는 추가적으로 <신의 탑> 주인공 인물 형상화에서의 영웅성을 서술하고, <유충렬전>과의 비교를 통해 논의에 깊이를 더한다.
 <신의 탑>의 주인공 밤은, 작품 내 설정된 ‘탑’이라는 공간 내부에 자의적으로 들어간 ‘비선별인원’이다. 이는 ‘외부자’의 이질성을 보여 주는 것으로, 탑 내의 인물들에게 밤은 낯선 존재이다. 이는 슈퍼히어로에게서도, 영웅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면모였다. 능력 때문이든, 혹은 다른 요인 때문이든, ‘낯섦’은 그의 특별함을 부각시킨다. 또한, 밤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운명을 따라가고 있다. 나아가 운명을 넘어 본인의 숙명을 깨닫는 인물로, 과거 영웅들이 고난 극복을 통해 힘을 키우고 정체성을 구축해 나가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밤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우월성은 영웅이 갖춘 성격적 특질로 손색이 없다.
 위에서 언급된 밤의 영웅성은 <유충렬전>에서도 보이는 특성이다. 조력자의 도움으로 행복해지며, 타자성을 지니고, 이원적인 세계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영웅서사가 현대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시대에 맞는 변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통점에서 출발하는 차이점을 발견하는 것이 현대적 활용 콘텐츠를 분석하는 목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미세한 차이에는 당대의 사회상까지도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둘의 차이는, 훼손된 세계 질서를 회복할 숙명에 대응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유충렬은 세계 질서를 직접 봉합하고 국가와 가정의 회복까지 도모했다면, 밤은 질서를 스스로 재창조한다. 이는 현대의 주체적인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며, 밤이 국가와 가정이 아닌 동료와의 회복을 지향하는 것 또한 사회적인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이렇듯 영웅서사는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며 이면에 숨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그 서사는 여전히 상당한 인기를 차지한다. 우리는 앞선 논의에 이어서 다시금 우리의 영웅들을 표면에 되살릴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논의의 공간과 미래에 대하여

 논의의 장은 한국고소설학회에 구축된 ‘온라인 학술대회’메뉴에서 펼쳐졌다. 발제자들이 미리 발표문과 토론문, 그에 대한 답변을 작성하여 업로드했기 때문에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기존 현장에서 이루어지던 학술대회와는 달리, 시간의 제약 없이 참여자들이 발표문을 편안하게 읽고 고민할 수 있던 것이 장점이었다. 그러나 현장 토론에서의 열기는 온라인에서 찾아보기 다소 어려웠다. 정확한 발표 시간이 공지되지 않은 탓에 질문자들은 언제 질문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고, 게시판에 글로 작성하는 질문은 논리가 갖추어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주어 다양한 질문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학회를 소개하며 공간에 대해 기술하는 일은 상당히 새롭다. 기존에는 닫혀 있는 강의실에서 학회가 이루어졌다면, 이번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되어 다른 공간에서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실시간으로 화상 학회를 진행하여 성공을 이룬 사례도 존재했다. 이를 발판삼아 앞으로를 대비하며, 영웅뿐 아니라 현대의 디지털사회를 거쳐 도래할 미래를 고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김태림 기자 | bianca111@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