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3호 사설] 차별적으로 잔인한 바이러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감염될 경우 자신과 가까운 사람부터 피해를 입히는 코로나19를 ‘잔인한 바이러스’라 표현한 바 있다. 정은경 본부장이 말하는 코로나19의 잔인성은 인간적 감정이 무시되는 바이러스의 무차별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코로나 확산 사례를 살펴보면, 그것은 전혀 무차별적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는 사회적 취약계층을 집중적으로 겨냥한다는 점에서 차별적으로 잔인하다.
 우리나라의 집단감염 사례를 살펴보자. 구로구 콜센터 집단감염 사례, 쿠팡 부천 물류센터 집단감염 사례의 공통점은 이들이 불안정 노동자집단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전체 감염률이 8.5%인 반면 구로구 콜센터의 감염률이 43.5%(216명 중 94명)에 달한다는 것은 이곳의 노동환경이 전염병에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증명한다. 대부분 비정규직이었던 콜센터 노동자들은 1m 간격으로 다닥다닥 붙어 앉아 고객의 전화를 응대했다. 전화로 고객과 소통하는 직업 특성상 근무 중 마스크 를 쓰는 것은 불가능했고, 비용을 문제로 재택근무는 고려되지 않았다. 언제든 다른 용역으로 대체될 수 있는 불안정한 노동환경에서 몸에 이상 징후를 느낀다고 하더라도 업무를 쉴 순 없었고, 집단감염은 예정된 수순과 같았다. 쿠팡 부천 물류 센터의 노동환경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컨베이어벨트에 늘어선 직원 사이의 간격은 1m 남짓이었고, 식당에서는 100여명이 붙어 앉아 식사를 했다. 또한 정규직, 계약직, 일용직의 업무군이 뒤섞여 운영되는 물류센터의 특성상 매일 같이 바뀌는 근무자 중 감염 위험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란 불가능했다. 또 다른 집단감염 사례가 발생한 요양병원은 어떠한가. 10개에서 최대 33개의 병상을 한 병실에 두는 요양병원의 운영방식에서 면역력이 떨어지는 노년층은 감염위험에 그대로 노출돼있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팬데믹은 14세기의 흑사병과 같이 무차별적 재난이 아니다. 개인의 자유를 내세우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사회적 취약계층은 주어진 환경에 군말없이 붙어앉아 시키는 일을 처리할 자유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새벽엔 여의도 증권가 사무실에 녹즙 배달을 나가고 아침 9시엔 콜센터로 출근하는 성실한 노동자는 바이러스의 첫 번째 타겟이 된다. 더 이상은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부’의 무책임 문제가 아니다. 전염병의 차별적 ‘잔인성’을 회수하기 위해선 수직적 산업구조의 근본적 전환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