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5호 학술대회취재: 제16회 비판사회학 콜로키움] 다수와 소수 사이에서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재학생. 본고를 읽고 있는 많은 이를 규정할 수 있는 범위이다. 그러나 경희대학교에 소속되지 않은 독자도, 원생이 아닌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어떤 집단을 정의하면 그렇지 않은 집단이 생겨난다. 한국 사회에 서 집단을 만드는 것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다. 고등학교까지는 의무 교육 기간으로, 노력하지 않아도‘어떤 소속’ 을 꼬리표처럼 달게 된다. 우리는 ‘소속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문제는 소속된 집단이 소수일 때 생긴다. 주류와 비주류의 범주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다수는 소수를 ‘이외의 것’으로 바라보고이해하려 한다. 그 이해의 시도 역시 권력을 쥔 다수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임을 간과하고. 다시 말해, 기자가 본고 에서 다룰 소수자의 정체성을 이해하려는 것 역시 그들에게는 불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들을 ‘이해’할 권력은 타인에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해의 불필요함’을 이해하기 위해서 콜로키움에 참여하고 기록한다.
 지난 9월 18일, 비판사회학회에서 콜로키움을 주관했다. 코 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콜로 키움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손인서(고려대학교 아세아문 제연구소)의 트랜스젠더의 정체성 구성 연구를 중심으로, 이호림(고려대 보건학과 박사 수료)의 토론과 장내 질답이 이어 지는 자리였다.‘트랜스젠더의 젠더정체성 구성’이라는 주제 로 개최된 콜로키움은 활발한 토론 현장 속에서 진행되었다. 성 정체성과 소수자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현재 흐름에 맞게, 토론자와 콜로키움 참여자들의 비판 역시 날카로웠다.

이분법의 함정

 어떤 것을 두 가지로 분리하는 것은 상당히 간편하다. 문제를 이해할 때 어느 한 부분에만 속하도록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꼭 두 가지가 아니더라도, 분류 체계를 만드는 것은 편리함을 제공한다. 초기 고고학자들은 유물을 유형으로 나누었다. 특정 특질을 공통적으로 가지는 여러 개의 유물이 있다면, 그것을 하나의 유형으로 정의할 수 있다. 새로운 유물이 등장하더라도 분류 체계에 적용하여 설명할 수 있었다.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점이있었다. 유물은 시대에 맞추어 천천히 변화한다는 것이다. A 유형과 B 유형의 중간 지점을 정확하게 지적할 수 있다면, 그 중간 지점의 유물은 어느 유형으로도 분류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분법의 함정도 같은 곳에 있다. 둘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 등장한다면, 그것은 배척된다. 배척받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의 집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남성과 여성으로 분류한 성별 이외의 사람들은 어느 집단을 택해야 하는가? 손인서의 연구 결과 역시 같은 지점을 시사한다. 생물학적인 성별뿐만 아닌 사회적인 성(Gender)도 이분법으로 나뉜 사회에서 젠더정체 성을 구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연구의 출발 또한 성 소수자의 사회적 낙인이었다. 연구자가 제시한 예시를 간단하게 기술한다면, 최근 트랜스젠더 여성의 숙명여자대학교 입학 포기가 있겠다. 이 또한 트랜스젠더 여성을 ‘여성이 아닌자’로 정의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다. 연구자는 구성주의적 관점과 퀴어이론을 활용하여 ‘적응적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이러한 문제를 살피고자 했다. 구성주의적 관점은 문제가 반복해서 생산하는 구조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면, 퀴어 이론은 그를 행위하는 행위자에 주목하여 보고 있다. 반면 적응적 대응은 행위자의 행위가 어떻게 구조를 재생산하는지에 주목하여 ‘저항’과 ‘재생산’을 동시에 이해하려는 관점이다. 손인서는 심층 인터뷰 및 근거 이 론 분석을 통해 트랜스젠더가 젠더정체성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손인서는 젠더이분법 중심 사회에서, 주류 사회와의 상호작용에서, 그리고 소수자의 커뮤니티 내부에서 각각 트랜스젠더가 어떻게 정체성을 구성하는지 묻는다. 그 결과는 ‘순응’과 ‘저항’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에 순응하는 이들은 대부분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에 본인을 맞추고자 했다. 젠더이분법의 사회적 압력이 그들에게 가하는 차별과 낙인에 대한 대응은 이분법에 부합하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이루어졌다. 이를테면, 트랜스젠더 여성은 사회적으로 ‘여성’이라고 정의할 때 만족하는 조건을 다른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신체 부위를 노출하는 등의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젠더이분법을 다시 내면화하는 수단이 된다.
 소수자만이 모인 커뮤니티 내부에서도 젠더이분법을 재생산하는 데에 기여한다. 우선, 트랜 스젠더 규범성(Trans-Normativity)을 생산하여 집단 내에서‘지켜야 할 기준’을 제공한다. 이에 따라 규범을 지키는 이와 지키지 않는 이로 구분하여 지키지 않는 이를 타자화하는 과정을 밟으며, 자연스럽게 ‘규범을 지키는 이’들은 사회에서 규정하는 ‘일반 남성’과 ‘일반 여성’의 모습과 유사해진다. 반복적인 규범의 생산은 젠더이분법을 더욱 공고하게 내면화하며, 나아가 규범을 지키지 못하는 이들을 소외시키는 데에 이른다.
 반면 위와 같은 이분법적 규범을 거부하며 대안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며, 규범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구축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대안적 정체성을 형성한 이들은 커뮤니티 및 ‘소수자 내부의 주류 흐름’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소외된다. 즉 어떤 방향으로 다가가든, 사회적으로 내부 계층화와 자기소외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토론자 이호림은 연구가 2014년도에서 2015년도에 진행되었다는 점을 들어 현대 상황과 동떨어져 있음을 지적 했다. 특히, 트랜스젠더를 배제한 페미니즘인 터프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의 등장을 언급하며 소수자 내부의 논의도 지속적으로 변화할 수있다는것을 들어 연구가 더욱확장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젠더이분법을 정한 것은 누구인가

 논의는 소수자의 정의와 젠더이분법의 문제로 정리된다. 젠더이분법은 오히려 소수자 집단에서 재생산되며, 사회의 지배 권력은 소수자 내부에서까지 강력하게 작동 한다. 이분법 아래에서 소수자를 정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고, 다시금 이분법적인 사회 규칙을 내재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악순환의 반복에서 소수자들은 본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일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다. 기자 또한 이 오랜 문제에 답을 제기할 수는 없다. 따라서 콜로키움에 참여하며 정리했던 생각을 지면에 내놓는 것으로 의견을 대신하고자 한다.
 차별적인 시선이 될 것을 우려하여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고 가상의 ‘김’을 가정한다. 김은 어렸을 때부터 본인을 남성으로 봐 주기를 바란 생물학적 여성이다. 본인의 옷을 선택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무렵부터 김은‘머리를 자르고’, ‘치마를 입지 않는다’. 외양은 때로 본인의 개성을 표출하는 수단이 되지만, 특정한 옷을 배제하고 외양을 바꿈으로써 젠더정체성을 드러 내는것은 고찰해 볼 만한 지점이다. 어떤 이는 그것이 사회 일반적인 남성의 모습이기 때문에 젠더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회 일반적인 남성의 모습은 누가 지정했으며, 왜 그렇게 지정했는가? 끝없이 물고 들어갈 수 있는 질문이다. 이처럼 트랜스젠더 집단 내부의 젠더이분법은 사회가 규정하는 ‘남성’과‘여성’의 사회적인 역할 및 이미지에 기반하여 형성되어 있다.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역할은 사회가 부여한 것에 불과하다는 논의는 계속 진행되어 왔음에도, 소수자 집단에서는 ‘이전의 성적 역할’이 강요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이럴 때면 신체적인 차이 외의 모든 것이 무(無)인 상태로 돌아간다면 어떨지 고민해 보게 된다. 신체적 차이 이외에 성별에 대해 아무것도 정의되어 있지 않을 때, 그때로 돌아갔을 때 젠더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지.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이 트랜스젠더 논의에 대응하는 본인의 태도가 아닐까.

마무리하며

글을 전개하며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인권과 직결되는 문제는 항상 다루기 어렵다. 연구 또한 건조하게 연구 결과를 리뷰하고 있을 뿐, 어떤 의견을 지지하거나 부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소개되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가 본인의 입장을 정해 바라보고 있을 것이며, 필자 또한 특정 의견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면에 그 의견을 옮기지는 않을 것이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공하고 그에 대해 시사할 만한 점을 제공하는 것까지가 본 지면의 역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콜로키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토론의 열띤 분위기는 인상적이었다. 그만큼 다양한 방식의 논의가 펼쳐지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그 의견을 다시 모아 하 나의 글로 펼칠 수 있기를 바라며 마무리한다.


김태림 기자 | bianca111@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