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6호 책지성①: 정세랑,『시선으로부터,』(2020)] 심시선 여사의 시선으로부터,

하와이, 제사 그리고 보물찾기

 책 『시선으로부터,』는 ‘하와이’, ‘제사’ 그리고 ‘보물찾기’ 세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연결고리가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 이 단어들의 조합은 신선하고 엉뚱하며 귀엽다.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했지만 자신의 결을 끝까지 지켰던 할머니 심시선으로부터 뻗어 나온 가족들이 하와이에서 일주일간 엄마를 추억한다. 이 재밌고도 독특한 이야기는 평소에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시선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십 주기 엄마 제사를 하와이에서 지내야겠다고 선언한 큰 딸 명혜의 갑작스런 한마디로 시작된다. 모든 제기와 음식 준비가 필수인 복잡하고도 경건한 의식을 휴양지에서 어떻게 지낼까 하는 걱정과 우려를 먼저 들게 한다. 한국 사회에서 죽음은 슬프고 두려우며, 그 의식은 무겁고 엄숙해야만 한다는 것은 깨져도 될 법한 고정관념에 불과했다는 것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물론 옛날 어른들이 보았다면 노발대발하며 이해할 수 없다고 항의를 했겠지만, 그 상상조차 어딘지 모를 통쾌함으로 다가왔다. 기 센 여자가 아닌 기세 좋은 여자 심시선 여사와 그 멋짐을 닮은 딸들을 보면서 우리 할머니와 고모들은 왜 저러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과 나는 꼭 그녀를 닮은 할머니가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명사 시선이 아닌 인물 시선

 “기일 저녁 여덟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p.83

 ‘시선’은 눈의 방향이 아니라 이 소설의 주인공인 심시선 여사의 이름이다. 미술가이자 작가이며 시대를 앞서간 어른이었던 심시선 여사. 그녀가 두 번의 결혼으로 만들어낸 삼대가 하와이에서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각자의 방식으로 기리기로 한다. 이것은 시선이 잠시 머물렀던 도시에서 그녀를 기억하고, 또한 앞으로 자신들이 시선의 뿌리임을 잊지 않기 위한 과정이다. 각 장의 구조마다 심시선의 살아생전 인터뷰나 사건을 담았으며, 그 뒤 가족들과 연결된 조각들이 하나씩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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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시선은 6·25 때 육촌 오빠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가족을 기다리는 와중에 고발이 있었고 둘째 오빠와 함께 오려고 했던 남은 가족들은 모두 끌려가 총살을 당했다. 그 이후 심시선은 육촌 오빠 아내의 주선으로 하와이로 이민을 떠난다. 세탁 공장에서 일을 하며 온갖 고생을 하다가 유명화가 마우어를 만나 다른 길로 들어선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마우어로부터 오는 지독한 냉대, 간헐적인 폭력을 모두 견뎠다. 후에 이 화가가 자살하기 전 남긴 이기적인 복수와 같은 유언 때문에 심시선은 그가 열렬히 사랑했던 여자이자 뮤즈로 평가받는다. 물론 현실과는 달랐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기억했고, 시선은 평생을 시달렸다. 인간적으로 의지하고 도망을 도운 요제프리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대중들은 그녀의 그림보다는 삶에 더 관심을 가졌다. 할머니 심시선이 당한 남성의 폭력은 손녀들에게도 벌어진다. 시대가 바뀌어도 그 힘을 잃지 않고 버티는 것들.

 “엄마, 나 걱정 안 해?” 공항에서 헤어지면서 지수가 명혜에게 물었다. “걱정해야 해?” “맨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제멋대로 사는데?” “아, 뭐.” 명혜가 안경을 위로 올렸다. “심시선 여사 닮았으면 어떻게든 살아남겠지.” 곁에서는 난정이 비행 시간이 다른 우윤을 안고 놓질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난정도 명혜의 말에 어느 정도 위안을 얻었다. 우윤이는 약해 보이지만 시선으로부터 뻗어나왔지. 지지 않고 꺾이지 않을 거야. 그걸로 충분할거야.
p.330

 이 소설은 여성에 대한 부당한 대우, 남녀차별, 제사, 폭력, 이혼 등 한국적인 병폐를 많이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끄집어 올릴 때 심시선이라는 한 인물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딸 셋과 아들 하나, 사위 둘 며느리 하나, 그리고 손주 다섯에게 심시선은 자손들에게그것을 피해가는 방법을 유전하고 그와 그녀들은 가족들의 울타리 안에서 자신들을 지켜나간다. 또 할머니의 제사를 위해 온 하와이에서 가족 구성원들 모두 저마다 지고 있던 고민과 인생의 무게를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내는데 그 모든 중심에는 심시선이 있다. 정말 책의 제목처럼 모든 것이 “시선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딸로서 할머니로서 굴곡진 삶을 살았던 심시선 여사. 그 어떤 화려한 미사여구로 표현이 안 되는 그녀는 딱 심시선처럼 살았다. 모계중심의 가계에서 딸과 손녀들은 말해지지 않는 것들로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며 할머니가 나눠준 조각들로 자신들의 삶을 풀어나간다. 그녀가 인터뷰에서 했던 얘기들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고 지나칠 수 없는 문장들이다. 특히 자식들보다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다섯 손주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어느새 우리의 삶에 깊숙이 투영된다.
회사에서 뜻하지 않게 염산테러를 당해 잠으로 그 슬픔을 이겨내고 있지만 다시 복귀하기로 마음먹었던 화수, 할머니를 위한 무지개 사진을 찍기 위해 만난 하와이 친구와 헤어지려고 했을 때 마음속에 꿈틀대던 무언가를 깨닫고 칠레 연안 유조선 야생동물 구조를 위해 비행기 표를 바꾼 지수, 어릴 때 크게 아파 죽음의 그늘에서 온전히 벗어나고자 서핑으로 자신만의 파도를 탔던 우윤, 엄연히 보면 심 여사의 핏줄은 아니지만그녀로부터 20대인 자신의 삶을 다짐하는 규림. 하와이에서도 외래종의 깃털만 보인다며 시무룩해 하면서도 가족들을 새에 비유해 보기도 하는 해림까지.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p.331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어쩌면 21세기를 살고 있는 내가 그리고 우리가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진정 듣고 싶었던 말들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론 넘어지고 울지라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하면 괜찮다고 토닥여주던 심시선 여사를 위해 찾은 보물찾기는 아직 가본적 없는 하와이를 그리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다. 그녀를 위해 준비했던 하와이에만 있는 도너츠, 팬케이크 먹고 커피를 마시며, 훌라를 배우리라 마음먹으면서.

안혜지 기자 | hjahn1678@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