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7호 인터뷰: 정다함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역사 콘텐츠, 학술성과 대중성의 사이에서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면서 각종 미디어에서는 학문의 영역으로만 여겨지던 인문학을 콘텐츠로 탈바꿈시켜왔다. 특히, 역사 콘텐츠는“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표어와 함께 대중의 집중적 관심을 받고 있다. 역사 콘텐츠의 전문성 결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기도 하지만,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여전하다. 그렇다면 학문의 콘텐츠화 흐름에 있어서 우리 원생들은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 걸까?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의 정다함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역사 콘텐츠 속 학술성과 대중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왜 역사는 콘텐츠화 되는가?

Q. 최근 역사를 다루는 콘텐츠들이 늘어나면서 전공이 아니더라도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원생도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역사 관련 콘텐츠의 증가로 역사에 관한 관심도가 커지고 있다는 걸 체감하십니까?

역사를‘콘텐츠’로서 상품화하고 소비하는 흐름이 10여 년간 계속되면서 아무래도 역사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을 겁니다. 하지만 분석과 비평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역사가 대중화된다는 점에 대한 체감보다는 그런 흐름 속에서 과연 무엇을 읽어내어 고민하고 비판을 할지에 대한 역할과 책임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점을 더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역사에 미디어와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콘텐츠라는 결과물들에 어떤 관점으로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과 그런 콘텐츠화로 발생하는 복잡한 양상의 문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하기 위한 분석이 필요해지기 때문입니다.

Q. 그렇다면, 혹시 교수님께서도 즐겨보시거나 주시하는 역사 콘텐츠가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리고, 주목하게 된 요소가 무엇인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약 20년 가까이 대부분 사람들이 콘텐츠화의 과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소비해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를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발생한 것이었는지 살펴보아야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비판적·분석적으로 접근하는 입장입니다. 그렇기에 특별히 즐겨보거나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역사 관련 콘텐츠는 거의 없는 편입니다. 다만, 비판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 주목하는 것들은 꽤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증가하는 역사 콘텐츠의 수만큼 그와 관련해서 전문성 논란, 역사 왜곡 등 여러 문제점 역시 발생하고 있습니다. 학자의 입장에서 이런 사건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학술적 전문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여전히 같은 문제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문제들은 ‘전문성’이나 ‘객관성’에 기반한 역사인식론으로 분석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학술적 전문성과 달리 설민석과 같은 새로운 에이전트들이 내세우는 전문성이라는 것을 누가 어떻게 만들어내고 유통시키는 것인가, 일반 대중은 어떤 입장에서 이를 광범위하게 소비하고 있는 것인가, 이 일련의 과정에 국가의 통치 권력과 미디어 · 테크놀로지 자본은 어떤 방식으로 개입해왔는가 등등의 새로운 논점과 질문들이 제기되어야 합니다. 그간 역사학계에서 랑케(Leopold von Ranke) 이후 ‘실증주의’를 강조해 온 근대국민국가 역사학의 인식론적 한계 너머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생산적 논의가 잘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새로운 논점과 질문이 제시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Q. 역사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수요는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역사와 관련된 콘텐츠 역시 계속해서 제작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양질의 콘텐츠를 찾기 어려워지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역사를 다룬 ‘콘텐츠’라는 상품들이 새로운 미디어 · 테크놀로지를 소유한 자본, 국가의 산업정책 및 교육정책, 그 흐름에 종속당한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역사학자들, 새로운 미디어에 편승해서 등장한 새로운 부류의 에이전트들 등등의 몇몇 특정한 주체들 사이에서 특정한 방향으로만 형성되어 온 관계망 안에서 제작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흐름이 그저 보편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것처럼 당연시되며 소비돼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역사의 대중화라고 지칭해 온 현상이 엄밀히는 역사학 연구 성과의 대중화임에도 불구하고, 역사학계에서 이런 맥락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도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인문학의 콘텐츠화 과정에서 학계와 대학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또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까?

인문학이 ‘콘텐츠’라는 상품의 ‘소재’ 정도로 전락하는 흐름 속에서, 학계와 대학들은 그런 흐름의 역사적 맥락을 고민하기보다는 재빨리 흐름에 편승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가장 보편적 가치로 여기던 역사학자들이 90년대 말 이후 세계화의 물결과 함께 거세진 근대국민국가 역사학에 대한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서 더 보편적으로 보이는 자본과 첨단 미디어 및 IT기술과의 결합을 택했으며, 지난 20년간 정부 역시 새로운 첨단 미디어와 IT기술 위주로 교육과 학문 연구의 방향을 개편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대학의 학과들은 학과명부터‘콘텐츠’나‘문화’가 들어가는 이름으로 변경하며 이런 흐름에 종속됐고, 해당 분과학문의 정체성과 역할, 그리고 교과과정 문제와 관련해서도 열려 있고 비판적인 논의가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대중성과 학술성 사이의 관계성

Q. 역사 콘텐츠의 전문성에 대한 비판 역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점의 원인을 대중성을 추구한 것에서 찾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은 무엇입니까?

지금도 흔히 역사학의 ‘전문성(학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영역이 서로 상충한다고 파악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인식이 존재하는 한, 두 영역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고, 결국 두 영역이 만나는 양상은 양 끝 지점 사이에서 이리 기울었다가 저리 기울었다 하는 방식으로만 되풀이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학의 전문성(학술성)과 대중성이 어떤 다양한 관계로 만날 수 있는가를 비판적으로 사유하기 위해서는 근대 이후 역사학과 대중적 미디어가 밀접하게 연동되고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테사 모리스 스즈키(Tessa Morris Suzuki)와 같은 역사학자는 근대 이후 영화와 같은 새로운 미디어가 역사와 결합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학문 연구의 결과물이 미디어가 보여주는 역사에 신빙성을 더함으로써 대중적 이고 상업적인 성공을 뒷받침하였음을 날카롭게 분석했습니다. 역사학의 학술성(전문성)과 대중성은 적어도 근대 이후 밀접하게 중첩되고 연동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만, 두 영역의 관계와 그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는 해석입니다.

Q. 교수님께서는 역사 콘텐츠에서 대중성과 학술성에 대한 균형보다 이 둘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관계성을 통해 만들어진 역사 콘텐츠의 특성은 무엇이 있습니까?

근대 이후 새로운 미디어들이 나타날 때마다 학술적인 역사 연구의 결과물을 인용하여 대중적인 흥행과 지지를 이끌어 내는 모습을 보여줬고, 이런 사례들은 대체로 근대국민국가의 역사연구와 서술을 정당화하는 성격을 지녀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역사와 새로운 미디어 · 테크놀로지의 결합으로 이윤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면, 새롭고 비판적인 역사학 연구의 결과물보다는, 대중에게 익숙한 근대국민국가의 역사인식론에 기반한 역사 연구의 결과물을 가져다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니, 가장 새로운 미디어와 테크놀로지로 만들었다는 이 콘텐츠라는 상품의 내용물은 정작 새로운 것이 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Q. 예능 프로그램을 비롯한 미디어의 콘텐츠는 학문 연구와 교단에서의 강의와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이런 미디어의 특성이 역사 콘텐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학술적 역사학의 성격과 콘텐츠의 대중 지향성의 두 영역이 서로 상충한다고 보는 입장은 아니지만, 이른바 ‘예능’ 위주의 콘텐츠라는 것들이 주류를 이루는 이 흐름이 여러 방면에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역사학 연구를 통해 생산된 지식이라는 것이 ‘예능’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어떻게 탈맥락화 또는 재맥락화 되는지를 성찰적·비판적으로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분과학문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질 수 있는 방향에서 논의해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패러다임의 전환 필요

Q. 이런 학문의 콘텐츠화가 가속화되는 흐름 속에서 원생들은 어떤 위치에 놓여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이런 콘텐츠화에서 원생들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학문 후속 세대의 생존조차도 위협받는 오늘날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일단 통설이라도 오리지널한 역사학 연구 결과 자체로 생산된 지식이 있지 않으면 콘텐츠란 것이 나올 수 없는데도, 그 콘텐츠라는 것은 그 역사학 연구의 구체적 결과물들을 전혀 인용하지 않을뿐더러 그 지식을 생산한 대학원생을 포함하여 역사학자들의 역할을 최소한도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자의 독창적인 연구 결과물이 이른바 콘텐츠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까지 학문적·경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가 시급히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전공의 교과과정 자체가 융합이라는 이름하에 그런 방향에서 오랫동안 개편되어 왔지만, 학생들이 그런 교과과정을 통해 단순히 콘텐츠의‘소재’를 제공해주고 동영상 편집 등을 맡는 기술적 차원의 역할을 주로 맡게 된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습니다.

Q. 원생에게 이러한 역사를 비롯한 학문을 다루는 콘텐츠에 대해서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수용해야 할지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자신이 전공하는 분과학문의 영역 자체가 어떤 역사적인 흐름에서 생겨난 것인지를 자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전공이 근대 이후의 어떤 특정한 맥락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어떤 역할을 해왔고 지금은 어떤 좌표에 위치하고 있는가를 살필 줄 알아야, 자신의 현재 위치도 가늠할 수 있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분과학문에 대한 연구와 그 분과학문의 ‘콘텐츠화’에 대한 연구에도 단순히 학문이 아니라 정치와 노동과 젠더라는 차원에서 비로소 매진하게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야 그 분과학문의 미래가 변하더라도 사회와 인간에게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담 · 정리: 김형중 기자 | lavadura@khu.ac.kr
사 진: 김혜원 기자 | hyensi07@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