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7호 책지성: 김만권,『새로운 가난이 온다』(2021)] 새로운 가난에 맞서기 위하여

 “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박완서의 단편 『도둑맞은 가난』(2005)의 한 대목이다. 짧은 단편집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가족은 아버지의 실직과 허영심 많은 어머니로 인해 모든 재산을 날리고 판자촌으로 이사 오게 된다. 주인공의 가족은 가난에 못 이겨 자살을 선택하고 주인공만이 여공으로 살아가며 삶을 스스로 영위한다. 어느 날 도금공장에 다니는 청년을 알게 되고“같이 살면 하룻밤에 연탄 반장을 아낄 수 있지 않느냐”는 이유로 그와 동거를 한다. 하지만 그 청년은 부잣집의 대학생 아들로 아버지가 빈민촌에 보내 가난을 경험시킨 것일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이제 부자들이 가난마저 훔쳐간다”고 울부짖는다.

 6.25 동란 이후 1960년대의 대한민국은 빈곤율 40%라는 절대적인 빈곤에 시달렸다. 1960년 대 성공적인 산업화 이후 절대적인 빈곤율은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르러 절대 빈곤율은 약 1%까지 하락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중산층 10명 중 8명은 자신을 빈곤층으로 여긴다. 풍요로운 사회가 도래하며 산업화 시대의 여공들은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났지만, 아직도 개인은 또 다른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

새로운 가난

 디자이너 빅토르 파파넥(Victor Papanek)은 그의 저서『인간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the Real World, 1917)에서 산업 디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산업 디자인보다 더 유해한 작업들이 존재하지만 그 수는 극소수이다.… (중략) 그전에는 어떤 사람이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는 그는 장군이 되거나 석탄 광산을 소유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핵물리학을 공부했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산업 디자인이 대량생산을 토대로 살인을 자행하고 있다”빅토르 파파넥의 산업 디자인에 대한 견해는 산업 디자인을 넘어 현재까지 가난한 자들을 만들어 내는 사회 체제 전반으로 확대된다. 오늘날 산업 사회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기반으로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소득의 양극화, 고용의 불안정화와 기술 발전에 의한 정보의 불평등 안에서 가난의 모습 또한 다양한 변화를 맞고 있다. 새로운 가난은 바로 이러한 혼란에서부터 우리를 향해 오고 있다.

 제2기계 시대라고도 불리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은 사회적 안전망이 사라지며 찾아온 것이기에 더욱 치명적이다. 디지털의 얼굴을 한 시대의 노동과 가난은 이제껏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새로움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움은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 것일까?

 ‘변화하는 것’을 말하기에 앞서 최근 현 상황 특히, 팬데믹에 관해 짚고 가야 한다. 최근 코로나 이후 상황을 예측하는 수많은 책이 출판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코로나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책들은 공통으로‘코로나가 발생하기 이전 상황으로 완전하게 돌아갈 수 없으며, 기술·사회·문화·환경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가속화 할 것’이라 예측한다. 팬데믹 상황의 가장 큰 특징은‘언택트(Untact)’이다. 접촉하지 않는다는 뜻의 언택트는 현재 우리 사회 인간의 노동력이 들어가는 자리에 기계를 놓음으로써 사람과 사람의 연결고리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우리는 타인을 만나지 않고 대화를 하고, 매장에 가지 않아도 주문을 할 수 있다. 이처럼 이전에 대면으로 행해지던 많은 것들이 기술적 변화와 코로나에 의해 사라지거나 대체되고 있는중이다.

 과거 기술의 발전은 공간적, 시간적 제약을 줄여 타자와 타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지금 기술의 발전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대신 자본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노동의 가치 또한 변해가고 있다. 막스 베버(Max Weber)의『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04~1905)에서 베버는 노동의 가치를 윤리적으로 분석한다. 노동을 통해 사회적, 경제적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베버의 논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 노동은 기계로 대체되어 시장에서 상품화된다. 노동은 이제 대체 가능한 상품이 되어 가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인간의 노동력은 기계와 경쟁하고, 기계에 의해 대체됐다. 이제 우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기계와 경쟁하는 중이다.

 자본주의는 엘리트층의 과두주의적 정치체제와 함께 성장해오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해지는 비민주적이고, 비인륜적인 행위는 가난한 자를 더욱 가난하게 그리고 부유한 자를 더 부유하게 만들고 있다. 2019년도 국세청이 제출한 2017 귀속연도 통합소득(근로소득과 종합소득)에 따르면 상위 0.1%에 속하는 2만 2,000여 명이 하위 27%에 속하는 629만 5,000명의 소득을 합친 것만큼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세계 불평등 보고서』(2018)에 따르면 미국 1인당 평균 세전 실질 국민소득은 1980년 이후 60% 상승했지만, 하위 50%의 소득은 약 1만 5천 달러에서 정체됐다. 이 집단은 소득 대부분을 의료 지출로 소비했다. 반면 상위 계층은 2000년 이후 자본 소득이 크게 늘었다.

 가난해지는 것은 개인만이 아니다. 지구촌 시대 국가는 부유해지는 데 반하여 정부는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 정부는 전기, 교통, 의료, 교육, 수도 등과 같은 공공산업을 시장주의 논리에 입각해 이를 민영화했다. 공기업 운영이 경제적인 이익이 아닌 서비스의 질과 사회적인 역할에 입각한다면 민영화된 기업들은 단기적인 순이익에 급급하여 시설 관리와 보수에 소홀해지게 된다. 공공산업의 축소는 결국 일반 시민의 서비스 비용의 증가와 정부 부채에 대한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했다. 문제는 기술적 변화가 이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플랫폼 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플랫폼 산업의 성장은 경제적 번영과 녹색 성장 그리고 투명한 기업 경영으로 미래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플랫폼 산업에서 개인은 일정 수수료를 지불하고, 플랫폼은 개인에게 일을 제공한다. 하지만 플랫폼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안정한 고용과 노동자에 대한 처우는 상생이 아닌 착취에 가까운 형태이다. 예를 들어, 플랫폼 산업의 노동자들은 장시간 일을 하고 자신이 일한 몫의 수수료의 10~20%를 업체에 지불해야 한다. 착취형 구조에서 플랫폼 산업의 노동자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워킹 푸어(Working Poor)’를 벗어나기 힘들다.

제2기계 시대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찾아서

 저자는 이에 대한 해법을 노동 밖에서 찾는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조건에서 노동은 이제 필수 조건이 아닌 충분조건으로 변화된다. 기술적 번영이 가져온 풍요로운 시대 사람들의 노동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돼야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다. 저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디지털 시민권, 로봇세, 구글세, 기본자본, 기초자본, 전 국민 고용 보험 등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위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다양한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고 기본 소득은 다른 형태 로 실행된다. 경기도민이라면 누구나 다 똑같이 받은 재난 지원금은 조건 없이 누구에게나 지급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의 논의와 연결된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중략)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 시「가난한 사랑 노래」(1988)의 한 부분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가난한 사랑 노래」의 울림은 계속해서 반향하고 있다. 아직 우리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산업화 시대 절대적인 빈곤에서 이제 벗어났지만, 또 다른 가난이 아직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가난하다고 해서 기회마저 사라져서는 안 된다. 인간다운 권리를 위해 이미 우리 앞으로 다가온 새로운 가난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마주 잡고 서로의 버팀목이 돼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

엄경용 기자 | gyung23@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