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7호 학술대회취재: 비교문화연구소 월례세미나] 민족은 어떻게 ‘상상’의 공동체가 되었나

 ‘민족주의’란 무엇일까? 대학원보에서는 2020년 4월부터 6월까지 인문학술에서‘민족주의의 잔재 혹은 계승’을 주제로‘민족주의’에 대해 다루었다. ‘힌두 국가’의 탄생과 인도의 민족주의,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와 라틴 아메리카의 국민주의를 거쳐 민족주의가 사라지지 않고 온전하게 남아있거나, 변용된 모습으로라도 남아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도 근대 민족주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난 12월 23일 수요일,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에서 월례 세미나를 진행했다. 코로나19가 진정세에 접어들지 않아 온라인회의 ZOOM을 통해 진행되었다. 장휘(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상상의 공동체』발표를 중심으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베네딕트 엔더슨(Benedict Anderson)의 『상상의공동체』(1983)는‘민족’의 개념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책이다. 민족을 논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책이지만 그 속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모두가 다르다. 민족주의에 대한 논쟁의 역사가 길듯이, 세미나도 오랜 시간 이어졌다.

민족주의의 역사

 근대 이전에는 인간의 삶의 의미를 종교에서 부여했지만, 근대 이후로 맑스주의를 포함한 사상들은 인간의 의미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인간의 의미에 대한 설명의 부재 속에서 세속적인 종교로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면서 민족주의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강력한 정체성의 근거가 된 것이다. 그래서 민족주의는 의식적으로 주장된 정치 이데올로기보다는 그 이전에 존재했던 종교공동체나 왕조국가 같은 더 큰 문화체계와의 결합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민족 정체성에서 신문의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문은 아주 오랫동안 대중들이 근대 국민국가라는 공간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매일 알게 하고 경험하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한 공동체가 비슷한 시간을 살면서 같은 사건을 공유하게 되면 일종의‘대중의례’가 되고 동일한 의례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의 공동체라는 정체성의 확립이 매우 쉬워진다. 민족 정체성 형성에는 이러한 신문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볼 수 있다.
 인쇄자본주의는 민족주의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16세기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인쇄산업이 굉장히 이윤이 높은 산업이 되면서 인쇄산업은 자본을 축적한다. 초반 라틴어 인쇄로 시작했던 인쇄산업은 라틴어를 아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150년 만에 시장이 포화상태가 되는데 때맞춰 종교개혁이 시작되면서 다양한 언어가 인쇄물로 나오게 된다. 유럽 특정한 지역의 방언들을 모두가 읽을 수 있는 활자로 통일시키면서 인쇄자본주의는 그 언어를 공유하는 공동체의 기반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기술과 생산자의 상호작용이 민족주의가 발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 것이다. 하지만 민족주의에 있어 중요한 것은 어떤 언어를 사용하냐는 것이 아니다. 어떤 언어이든지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엮어줄 수 있는 활자화된 수단을 사람들이 공유하게 됐을 때 민족적인 정체성이 생겨나는 것이다.
 베네딕트 엔더슨은 다른 연구자들과 다르게 민족주의의 발흥을 유럽이 아닌 라틴아메리카의 크리올(Creole)들로 본다. 크리올은 남미 안에서 태어난 유럽인으로 남미 안에서는 지배층으로 사회적인 성장을 할 수 있지만, 본국으로 돌아가면 사회적으로 어떠한 지위도 가지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이러한 크리올들이 모여 연대가 생겨나고, 문화가 생기고 신분이 생긴다. 그리고 이들이 식민지를 돌아다니며 지배층으로 살아가게 되면서 모국의 사람들이 아닌 식민지 지역의 사람들과 유대감을 가지고 정체성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것이 혁명과 미국의 수립으로 완성이 되어 민족주의 국가라는 하나의 모델이 된다. 그 이후에 프랑스 혁명을 통해 유럽에서 민족주의를 받아들이고 그것이 다시 식민지 국가에 퍼져나갔다는 것이 베네딕트 엔더슨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식민지들의 민족주의 형성은 어떻게 되었는가, 방대한 국토에 다양한 민족을 품고 있는 나라가 어떻게 하나의 민족임을 내세울 수 있었을까? 첫째, 식민지가 만들어낸 행정 단위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과 둘째, 교육제도라고 볼 수 있다. 식민지와 본국에서는 식민지를 운영하기 위한 사람들을 교육하기 위해 학교들을 짓는다. 학교에서는 유럽국가의 역사와 제도를 배우는데 유럽의 국가들에 있어서 국가 정체성의 핵심은 어떻게 기존의 국가 간 지배관계를 깨트려서 온전한 민족국가로 수립이 되었는가에 대한 해방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이를 배운 식민지의 지식인들은 이것이 보편적인 역사라면 식민지 역시 해방될 수 있다는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민족과 민족주의

 ‘민족주의란 무엇인가?’는 아주 오래된 질문이다. 하지만 그 답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민족주의’는 학자들조차도 그 정의가 합의되지 않은 개념이다. 일반적으로는 ‘민족의 구성원이 민족정체성과 민족국가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 생기는 신념체계’나 ‘민족 구성원이 자결을 쟁취하려 할 때 취하는 정치적 행동과 관련 있는 정치적 운동’ 정도의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민족주의’라는 단어가 번역어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번역을 쓸 것인가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민족’의 정의에 대한 시각 역시 다양하다. 객관적인 지표와 주관적인 시각으로 나누어 정의할 수 도 있고, 시원주의적인 시각과 구성주의적인 시각으로 정의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민족주의가 ‘근대’의 산물이며 순수하고 동질적인 민족은 허구로 절대로 달성할 수 없는 정치 프로세스로 여긴다. 이는 ‘단일민족’이라고 여겨온 한국사회도 마찬가지로, 어떠한 국가도 완벽하게 단일한 민족을 이루어 존재한 경우가 없으며 민족단위와 정치 단위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민족주의는 공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민족주의를 바라보는 공통된 시각이 존재한다. 민족주의가 계속해서 논쟁의 중심에 서고,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은 민족주의 담론이 근대 이후로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으로 모두에게 공유되기 때문이다. 인류는 서로 상이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민족들은 다르게 살아왔다는 믿음과 인류는 민족 공동체 안에서만 완성되고 다른 어떤 형태의 단체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국가 체제 자체가 국민국가가 전제될 때만 가능하며 각 민족을 서로 조정하게끔 세계가 짜여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장휘는 그러한 관점에서 민족주의 담론이 대부분의 세계의 우리를 규정하는 강력한 범주로 작동해왔던 것이라고 말한다.

왜 ‘상상’의 공동체인가?

 ‘민족’이‘상상의 공동체’라는 말을 들은 많은 사람이 베네딕트 엔더슨이 ‘민족’의 개념을 부정한 것이냐에 대한 고민에 휩싸인다. 하지만 이는 책을 오독한 것이다. 베네딕트 엔더슨은 이 책 내내 민족이 얼마나 강력한 공동체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족은 왜 ‘상상’의 공동체가 되었을까? 여기에서‘상상’의 의미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민족 내의 서로 알지도 못하고 만나보지도 않은 구성원들이 서로를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이라고 인식하는 데 있다. 민족국가라는 틀에서 서울에 사는 A는 제주도에 사는 B의 일을 서울에 사는 외국인인 C의 일보다 가깝게 여기는 것이‘상상’의 의미인 것이다. 엔더슨이 생각하는 ‘민족’은 상상의 산물이자 모든 민족을 품을 수 없기에 근본적으로 제한적인 영역이며 정치적인 집합으로써 주권적이고 동등하고 수평적인 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민족주의는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하지만‘민족’이라는 작은 의미에 집착하는 순간 다문화화가 빨라지고 세계화가 지속됨에 따라 갈등은 심화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어떠한 지표로‘민족’을 정의하는 것이 아닌 정치적인 집합이며 주권적이고 수평적인 공동체로 민족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문수빈 기자 | forest@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