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7호 기자칼럼] #정인아 미안해, 애도의 의미

 지난 1월, 한 시사프로그램에서 16개월 입양아를 학대해서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을 보도했고, 양부모의 충격적인 행태와 그에 대한 방관은 많은 시청자를 분노하게 했다. 프로그램은 사건 보도에서 멈추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애도와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일명‘정인아 미안해’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제안했고, 이에 대한 반응이 인터넷과 SNS를 뜨겁게 달궜다. 그러나 이런 화제성에 편승해서 홍보 목적의 게시물에‘정인아 미안해’만 붙여놓은 일이 비일비재했고, 심지어‘정인아 미안해’굿즈를 제작해서 판매를 시도했다가 거센 비난을 받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또한, SNS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관련 사진들에 대해서 는 관심을 받기 위한 행위로 보는 부정적인 시각 역시 존재했다.
 이런 촌극과 같은 사건들이 발생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캠페인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캠페인을 기획한 목적은 단순히 화제성을 확보하기 위함이 아니라 애도와 재발 방지를 위해서다. 정인이를 사망에 이르게 만든 가해자에는 학대한 양부모뿐만 아니라 학대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은 주변의 방관자들까지도 포함시킬 수 있다. 따라서 이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은 분노와 슬픔과 같은 감정의 표출이 아닌 방관자가 되지 않겠다는 즉,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해시태그를 달았다고 해서 캠페인에 참여한 것은 아니다. 애도와 동시에 새로운 의식을 형성해야 캠페인의 목적에 맞게 캠페인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SNS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챌린지의 형태로 여러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중에는‘정인아 미안해’와 같이 애도의 의미를 지닌 경우도 많았다. SNS 게시물로서의 속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여러 비판의 지점이 생기겠지만, 애도의 의미에 주목한다면 또 다른 시사점을 볼 수 있다.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집단적인 애도를 통해서 새로운 공동체 의식을 형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 따른다면 공동체 의식이 형성이 되었는지 여부에서 애도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번 캠페인 역시 아동 학대의 방관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공동의 의식이 형성된다면 충분히 애도로서 작동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피의자에 대한 분노나 애도에 대한 조소보다는 공동체의 의식 방향을 설정해나가는 것에 집중한다면 이번 캠페인이 해시태그에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김형중 기자 | lavadura@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