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8호 인문학술: 맞춤법에 대하여] 맞춤법을 없애자

“맞춤법을 없애자” 굉장히 이상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맞춤법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맞춤법은 언제부터 어겨서는 안 되는 ‘법’으로 자리잡았을까?
맞춤법은 실제로 우리의 언어에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인지, 왜 모두가 지켜야 하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tvN 문제적 남자 맞춤법 문제

‘-읍니다’와‘돐’의 추억, 그리고 짜장면

 어제도 단골 복사집 나이 지긋한 사장님은 나에게‘맡기신 자료 제본 다 되었읍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셨다. 1988년 현행 맞춤법이 시행되기 전에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국어 선생님한테서 “‘-습니다’가 아니라, ‘-읍니다’를 써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다. 받침에 쓰인 ‘ㅆ’이나 ‘ㅄ’은 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오면 연이어서 발음이 나기 때문에 굳이 두 번 겹쳐서 쓸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예컨대, 다음을 읽어 보라. ‘먹었읍니다, 오셨읍니다, 있읍니다, 없읍니다.’ ‘-습-’이라고 쓰지 않아도‘-습니다’라고 발음한다.
 당시에 선생님들이 ‘-읍니다’로 쓰라고 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습니다’로 쓰라고 했다. 예전엔 ‘돐잔치’라거나 ‘창립 10돐 기념’처럼 ‘돌’을 ‘돐’로 썼다. 중세부터 ‘돐’로 쓰였기 때문에 그 전통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돌’로 쓰라고 했다.
 해방 이후 사람들에게 말과 관련하여 가장 환영받았던 조치라고 한다면 단연‘짜장면’을 표준어 반열에 넣어준 일이 꼽힐 것이다. 이전에는‘자장면’만이 표준어였다. 중국어 ‘炸醬麵(zhajiangmian)’에서 온 이 말은 한자음으로 ‘작장면’이기도 하거니와 炸醬(zhajiang)을‘자장’이라고 쓰는 것이 표준 중국어 표기법에도 맞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짜장면’을 왜 못 쓰게 하냐는 불만이 끊이지 않자 ‘복수 표준어’라는 묘안을 짜낸다. 기존의 표준어에 사람들이 많이 쓰는 단어들을 편입시켜 주는 방식이다. 이렇게‘짜장면’이 복수 표준어 자격을 갖게 된 것이 2011년 일이다.
 이후 10년 동안 이전에는 비표준어였던 ‘택견(태껸), 품새(품세), 간지럽히다(간질이다), 맨날(만날), 복숭아뼈(복사뼈), 쌉싸름하다(쌉싸래하다), 허접쓰레기(허섭쓰레기), 개발새발(괴밟개발), 눈꼬리(눈초리), 먹거리(먹을거리), 끄적거리다(끼적거리다), 두리뭉실하다(두루뭉술하다), 손주(손자), 어리숙하다(어수룩하다), 섬찌ㅅ(섬뜩), 꼬시다(꾀다), 놀잇감(장난감), 딴지(딴죽), 마실(마을), 주책이다(주책없다), 걸판지다(거방지다), 까탈스럽다(까다롭다)’등 74개의 단어가 공식적인 표준어로 ‘사면 복권’되었다(이전에는 괄호 안의 단어만 표준어였다.). 미안하지만, 아직 ‘깡총깡총, 쭈꾸미, 꼼장어, 오돌뼈, 어줍잖다, 으시대다’같은 말은 여전히 비표준어, 즉 틀린 말이다!(‘깡충깡충, 주꾸미, 곰장어, 오도독뼈, 어쭙잖다, 으스대다’만 표준어이다!) 이렇게 표준어에 포함되는 단어수가 적은 것은 표준어를 정하는 사람들이 말의 변화에 대해 둔감해서라거나 현재 언중들이 쓰고 있는 말에 대한 자료 축적이 덜 되기 때문이 아니다. ‘표준어’를 국가가 정하기 때문이다.
 자, 이제 ‘짜장면’도 마음껏 쓰게 되었으니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인가? 맞다고 생각하며 썼는데 틀렸다고 컴퓨터 화면에 빨간 줄이 가는 단어들도 표준어 자격을 얻을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야 할까?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으면 불경한 일일까? 이러한 판결권은 누구에게 있고 그들은 그러한 권한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가? 지금처럼 표준/비표준의 이분법으로 말을 구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꼭 이 방법밖에 없는가? 다른 언어는 어떻게 하고 있나?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한국어가 작동하는 방식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행 맞춤법의 기본 원리는 절대적이라기보다는 경쟁하는 이론 중에서 하나가 선택된 것이다. 즉, 현행 맞춤법의 대원칙은 ‘(1)표준어를 (2)소리대로 적되 (3)어법에 맞도록’쓴다는 것인데, 이는 형태음소주의적 표기법이다. 이 원리를 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한일병합 직후 조선총독부가 공포한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1912)은 ‘갓흔’(같은), ‘바닷다’(받았다)처럼 소리 나는 대로 적자는 표음주의였다. 이 철자법에서는 받침으로 쓸 수 있는 자음은 10개(‘ㄱ, ㄴ, ㄹ, ㅁ, ㅂ, ㅅ, ㅇ, ㄺ, ㄻ, ㄼ’)만 쓴다. 맞춤법이 자리 잡아 갈 무렵에 이승만이 추진했던『한글 간소화 방안』(1954)도 표음주의 표기법을 원칙으로 하자는 주장이었다. 명사나 동사 등에 조사와 어미가 다양하게 붙어 발음이 달라지는 한국어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지금의 형태음소주의적 맞춤법 원리가 다른 표기 방안보다 여러모로 합리적이었다.

한글 맞춤법이라는 이중나선

 근대 국가는 분할되지 않는 하나의 단위, 하나의 공동체로 구상된다. 언어야말로 ‘우리’(국민, 민족)를 구획하고 타자를 경계 짓기에 가장 쉽고 탁월한 기준이다. 근대 국민어에 대한 상상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단일하고 표준적인 문법, 철자법을 요구한다. 단일한 언어 질서를 만들어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이라는 균질적인 공동체를 구성한다. 철자의 통일은 민족정신의 통일이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임에도 분리 불가능한 공동체적 동일성을 각인시키는 데에는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쓴다’는 확신만큼 설득력 있는 기준도 없다. 그리고 ‘같은 언어를 쓴다’는 생각은 다시 하나의 단일하고 표준화된 언어를 요구한다. 개인이 복무해야 할 전체를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이다.
 근대 이전 한글 중심의 한국어가 인쇄 매체를 통해 본격적으로 유통된 시기는 3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18세기 한글 소설이 상업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비디오 대여점처럼 소설 원본을 베껴서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는 세책(貰冊)이나 민간 출판업자가 판매를 목적으로 목판에 활자를 새겨 대량으로 찍어내던 방각(坊刻)이 유행했다. 본격적인 상업적 출판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평민, 관료, 여성, 노비 등 이용자층을 넓혀나갔다. 한글 소설의 대중화는 천주교 성서와 교리서 발행과 함께 한글의 대중적 보급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근대 이전에는 예를 들어 ‘꽃’이라는 단어도 ‘곳/곶/곷////꽅/꽃’처럼 여러 가지 형태로 표기되었다. 같은 책에서도 뒤죽박죽 쓰였다. 띄어쓰기도 ‘수저를 입속에너무깁히늣치말고(수저를 입속에 너무 깊이 넣지 말고)’처럼 일관성이나 일정한 원리가 없었다. 단일화·표준화에 대한 의식 자체가 없었다.
 근대 세계로 진입하려고 할 때, 이러한 언어적 차이로는 효과적으로 근대 지식을 확산시킬 수 없었다. 언어적 근대는 표준적이고 단일한 언어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근대 사회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지엽적인 차이를 소거하고 민족어라는 단일하고 공통의 체계가 필요했다. 근대 사회는 태생적으로 다양성을 불허하고 중앙집권적이다.
 우리가 쓰는 표준어는 한글맞춤법이라는 성문화된 규범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표준적인 사전 편찬이야말로 근대 민족국가의 공통 과제였다. 한글맞춤법은 한국어의 특성을 반영한 철자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언어학적 과제와 함께 언어 민족주의적 성격을 태생부터 갖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근대 세계로 진입하려는 열망과 겹친 일제 강점기는 언어에 대한 민족주의적 성격을 아주 떨칠 수는 없다. 조선인에게 조선어는 민족 정체성 자체이자 독립의 이유이다. 우리말에 대한 역사적 기억과 정서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라는 폭압적 상황은 언어적 근대를 향한 자생적 논의도 왜곡시켰다.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에도 국어학자들의 언어적 근대화를 향한 노력이 거듭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가 대중적·민중적 차원에서 실험·확인·승인·확산되는 과정 없이 진행된 한계가 있다. 민중은 계몽의 대상이지 관찰과 반영의 대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일제는 일본어를 ‘국어’라 부르며 유일한 공식어 자리에 올려놓고 조선어는 이등언어 취급을 했다. 일제는 조선에 대한 언어적 지배 전략을 철저하게 구사했다. 1911년 조선교육령을 통해 일본어와 조선어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쳤지만, 이때의 조선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한 보조 수단이었다. ‘국어(일본어)를 상용하지 않는자’(조선인)가 ‘국어(일본어)를 상용하는 자’(내지인)가 되기 위한 징검다리로 조선어를 위치시켰다. 학교에서 행해지는 모든 수업 용어는 오직 일본어였다. 이마저도 중일전쟁을 비롯한 침략 전쟁이 본격화한 1937년부터는 조선어를 선택과목으로 강등시키고 실질적으로는 폐지시켰다. 학교에서 조선어는 금지되었다.
 그러다 보니 언어의 근대화는 조선의 자주와 독립 의지와 맞물려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민족 고유의 질서가 필요했다. 변변한 사전도 없이 근대와 자주독립을 앞당길 수 없었다. ‘국어사전이 조선의 독립과 교육의 기초’(주시경)라는 언급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피식민에서 독립으로 향하는 이중나선이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의 언어적 근대는 언중들의 언어를 다양하게 반영하고 수렴하는 과정을 밟지 못했다. 도리어 한국어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국어학자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이론이 공식 철자법으로 채택되기 위한 이론 투쟁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여하튼 지금의 맞춤법은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다른 방식의 표기법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독보적 원리로 정착되었다. 이미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문화적 무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근대 국가가 확보한 공화주의적 공간을 유지할 수 있는 실천적 습관(아비투스)이 되었다. 맞춤법은 사회적 관습으로 실재한다.

▲ 영어‘baby sitter, baby-sitter, babysitter’의 사용량 변화 추이 ⓒ필자제공

맞춤법을 없애면

 한국의 언어정책의 성격을 살펴보자. 역사적 조건의 차이때문에 국가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언어정책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즉, 아카데미 프랑세즈 및 언어총국(DGLFLF; Delegation Generale a la Langue Francaise et aux Langues de France)으로 대표되는 프랑스식 중앙집권적/개입주의적 언어정책과 이러한 아카데미식 통제 기구를 두지 않는 독일식 민중적 언어정책(낭만주의/불개입주의)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프랑스식 중앙집권적인 국가어 통제 장치는 효율적이다. 순수한 프랑스어와 오염된 프랑스어를 구분하는 언어적 위계를 당연시한다. 프랑스어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언어 검열을 당연시하고 소수어나 방언을 배제한다. 민중들의 언어는 국가어에서 제외된다. 민중의 언어는 더럽고 혼탁하며 상층부의 언어가 올바르고 순수하다.
 반면에 독일에서는 민중(농민)의 언어가 기품 있고 오염되지 않은 말로 간주된다. 토착 농민들의 생활어에서 민족 특유의 원초적 모습을 찾으려는 태도이다. 아카데미적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독일어를 모어로 하는 시민들에게서 공통성을 찾으려고 했다. 이들은 말이 올바른지 잘못되었는지, 없어도 무관한지 꼭 필요한 것인지를 언어 관청에서 결정하는 것에 반대한다. 외래어도 자신들의 언어를 풍요롭게 해 줄 요소이므로 결코 배타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그런 것으로 독일어가 빈약해질 리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아카데미적(엘리트적) 권위에 기댄 프랑스의 언어정책을 답습한 일본식 언어정책을 2차 답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어문 규범은 근대 국가 형성 과정에서 ‘단일한 말로 소통해야 한다’는 강령 아래 한국어에 일정한 질서와 공통성을 부여했다. 한글 맞춤법은 공통어 형성이라는 근대 민족국가 건설의 과제와 일본 제국주의의 언어말살 정책에 맞서민족 정체성의 확립이라는 과제가 겹친 시기에 제정되었다. 변변한 사전도 없고 합의된 철자법도 없던 상황에서 이룬 성취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근대 국가 형성기의 언어철학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늘 내 언어에 대한 판결을 기다린다. 성문화된 규범이 없어도 표기의 질서는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어문 규범을 없앤다고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 어문 규범은 이미 뿌리내렸다. 올바르게 철자를 쓰라는 요구는 이제 문명인의 ‘최소’기준이자 사회적 장치다. 학교 교육, 다양한 미디어 환경, 공공언어 영역은 언어의 공통성을 유지하는 버팀목이다.
 성문법이 없는 다수 언어가 이를 잘 보여준다. 영어를 예로 들어보자. 영어에서‘요구르트’를 ‘yogurt’, ‘yoghurt’, ‘yoghourt’로 쓰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어 ‘베이비시터’도 ‘baby-sitter, baby sitter, babysitter’가 혼재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1950년대에는 ‘baby sitter’가 월등히 많이 쓰이다가, 196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babysitter’의 사용 빈도가 높아졌고, 2000년대 초에 잠깐 ‘baby-sitter’의 약진이 두드러지다가 현재에는 ‘babysitter’가 월등하게 많이 쓰인다. 사전편찬자들이 언중들이 단어가 실세계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축적해서 사전 표제어에 어떤 철자형을 올릴지를 자체 판단한다. 여러분이 서점에서 영어 사전을 고른다면 어떤 사전을 사겠는가? 여러분이 영어 작문을 한다면 어떻게 쓰겠는가?
 비슷한 경우에 한국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 우리는 이 단어를 ‘올바르게’쓰기 위해서는『표준국어대사전』(1999)에 어떻게 실려 있는지를 보거나, (만약 아직 표제어로 실려 있지 않다면) 방침이 정해질 때까지 국립국어원의 발표를 기다려야 한다. 공교롭게도 ‘베이비시터’는 국가사전인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실려 있지 않고, 사용자 참여형 사전이라는 『우리말샘』(2016)에 올라 있으면서도 ‘규범 표기는 미확정’이라고 적혀 있다. ‘미확정?’누구의 확정을 기다려야 하는가? 바로 국가다. 아직 이 단어의 표기를 위한 ‘회의’가 소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이런 단어들이 허다하다. 어문 규범을 없애면 다양한 철자가 공존하게 된다. 출판사의 내부 방침에 따라 ‘마르크스’와 ‘맑스’, ‘파리’와‘빠리’, ‘도스토옙스키’와 ‘도스또예프스끼’로 달리 쓸 것이다. ‘닦달’과 ‘닥달’이 사회적으로 경합할 것이다.
 국가의 개입을 멈추면, 말에 대한 의견 불일치를 당연시하고 이를 대하는 포용력도 커질 것이다. 말에 대한 상상력도 더 촉발될 것이다. 성문법을 없애야 비로소 지역, 사람, 시대에 대한 관심이 살아난다. 사전도 훨씬 다양해질 것이다. 사전마다 고유한 특장점을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성문법인 맞춤법을 폐지하면 말이 민주화되고 사회적 역량도 강화될 것이다. 게다가 표준어 설정에 따라 자동적으로 주변화되고 하위화되는 방언이 명실상부하게 대등한 언어 변종으로 인식될 것이다.

잡종성으로 말을 꽃피우자

 근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대적 언어 형성 과정 자체가 안고 있는 모순을 해체해야 한다. 근대 비판과 극복의 출발점은 근대의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즉, 근대의 극복은 통일된 언어적 근대를 위해 필연적으로 매장시켰던 언어의 잡종성을 복원시키는 일에서 출발한다. 잡종성은 일관된 체계성(랑그)을 가진 복수의 언어가 공존하거나 경합한다는 뜻이 아니다. 동질적이고 독립된 언어의 경쟁이 아니다. 비균질적이고 비체계적인(또는 제한적 체계인) 언어로서의 잡종성이다. 불완전하고 흔들리는 랑그의 뒤섞임.
 지금 우리가 접하는 성문화된 맞춤법(언어규범)과 국가 지정 표준어 정책은 근대적 언어 형성 과정에서 확립된 관점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인위적 규범을 만들어 ‘틀린 말’을 솎아내고, 미끈하고 단일한 언어 질서를 따르라는 명령대로 언어는 작동하지 않는다. 언어는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인간의 삶과 붙어 있다. 언어는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 행위이다. 언어는 화석 같은 법조문이 아니라 재즈 선율처럼 즉흥성과 잡종성으로 작동하는 생기가 있다.
 언어는 관습이다. 성문법을 없앤다고 관습이 사라지지 않는다. 불문법(관습법)은 축적된 선례가 참조되며 시간의 변화에 따라 변경된다. “맞춤법에 따르면”이라고 법규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관례와 기억을 공유하고 언제든 변경 가능성이 인정된다. 말의 변화를 보면서 순수한 언어를 파괴하는 범법행위로 보지 않아도 된다. 각자 언어놀이를 할 뿐. 언어 민족주의는 민족의 동일성을 강조한 나머지 다른 모든 정체성을 배제한다.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의 크고 작은 정체성 앞에서 배타성을 보일 수밖에 없다.
 필자는 성문화된 맞춤법을 없애고 표준어의 결정 권한을 시민에게 돌려주어야 좀 더 자유롭고 다양한 언어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적절한 비교일지는 모르겠지만, 경찰도 중앙집중형 국가경찰제에서 지방분권형 자치경찰제로 바꾸려고 하고 있다. 국가경찰제는 정권 안보나 시국 치안에 관여될 위험이 많다. 분권화된 자치경찰은 시민과 인권 친화적인 성격을 갖게 될 것이다. 말도 국가에서 시민사회에 그 권력을 넘겨주어야 한다. 겁낼 일이 아니다. 그렇게 바뀌어야 ‘맞냐, 틀리냐’식의 이분법에서 탈피할 수 있다. 올바름은 하나가 아니다.

김진해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