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8호 테마비평: 대중가요 속 서울의 모습]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서울 지명송

 100년이 넘는 대중가요 역사와 함께하고 있는 서울 지명송은 노래 제목과 가사에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지명이 등장하는 대중가요를 말한다. 1,500곡이 훨씬 넘는 것으로 확인된 서울 노래는 조선시대의 한양, 일제강점기의 경성 그리고 서울까지 도시의 명칭 변화가 담겨 있다. 또한 암울했던 망국의 일제강점기, 나라를 되찾은 기쁨의 해방공간, 민족의 비극 한국 전쟁, 60년대 경제개발과 산업화, 70년대 군사정권과 청년문화시대, 80년대 민주화항쟁과 비약적 경제 성장,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행사, 90년대 글로벌 시대, 2000년대 디지털세상까지 질곡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서울의 변천사를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대중가요에 등장하는 시대별 서울의 모습

 지금의 서울은 한강을 기점으로 강남과 강북으로 구분하지만 일제강점기는 청계천을 기점으로 북촌과 남촌으로 구분되었다. 북촌은 종로통을 중심으로 한 조선인 거주 지역이었고 남촌은 충무로(당시 본정本町)와 명동(당시 명치정明治町) 등 일본인 거주 지역이었다. 당시의 서울 노래는 조선인이 거주했던 북촌지역이 대다수였다. 일제강점기 서울 노래는 채규엽의 ‘종로네거리’(1931) 등 종로의 풍경을 그린 노래가 주종을 이뤘다. 가사에 등장하는 당시 종로네 거리는 엿장수가 등장하는 소박한 풍경이었다.
 국토의 대동맥인 서울역과 경부선은 오랫동안 서울 노래의 중요 소재로 각광을 받았다. 1908년 발표된 최남선의 창가 ‘경부철도가’를 시작으로 1936년 강홍식의 ‘유쾌한 시골 영감’을 거쳐 50년대에는 윤일로의 ‘눈물 젖은 서울역’, 한복남의 ‘꿈실은 경부선’등 개체 수가 급 증했다. 이농과 산업화가 절정에 달한 60년대에도 손인호의 ‘이별의 서울역’, 안다성의 ‘서울의 푸렛홈’등이 당대 서울 시민의 희로애락을 담아냈다.
 서울의 젖줄이자 상징인 한강도 예나 지금이나 서울 노래의 중심 소재로 흔들림이 없다. 1934년 박부용의 ‘노들강변’이 한강 풍경과 사랑의 정서를 노래했다면 한국 전쟁 때 발표된 현인의 ‘전우야 잘 자라’는 한강을 민족의 비극이 서린 공간으로 묘사했다. 50년대 이후 한강은 황금심의 ‘한강수에 배띄어라’가 증언하듯 휴식을 제공하는 유원지로서 서울 시민의 중요 생활공간이었음을 말해준다. 1979년 발표된 혜은이의‘제3한강교’는 눈부시게 발전과 개발이 진행된 한강의 모습을 증명한다. 또한, 이 노래는 서울을 구분하는 강이 청계천에서 한강으로 이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대적 변천과정까지 확인시켜준다.

해방 이후 60년대까지 서울 지명송

 해방공간에 발표된 장세정의 ‘울어라 은방울’등 서울 노래에는 당대 대중의 들뜬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해방 이후 남촌에 살던 일본인들이 물러가면서 서울 노래들은 점차 북촌에서 남촌으로 이전되는 변화가 포착된다. 해방의 감격을 경쾌한 리듬에 담은 1949년 발표된 현인의 ‘럭키 서울’은 지금껏 애창되는 명곡이다. 1942년 발표된 진방남의 ‘꽃마차’는 처음 중국의 ‘하르빈’이었던 지명이 해방 이후 서울로 바뀐 특이한 노래이다.
 한국 전쟁의 슬픔을 담은 이해연의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50년대를 대표하는 서울 지명송이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 공동묘지가 조성되었던 미아리고개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이 후퇴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철사 줄에 묶여 납치되어 넘어갔던 서울 북쪽의 유일한 외곽도로였음 을 이 노래는 말해준다. 현인의 ‘서울야곡’과 박신자의 ‘댄서의 순정’등은 미국문화의 동경으 로 유교적 사회규범을 뒤흔들며 가치관의 혼란을 겪었던 50년대 서울의 자유분방함과 문란함 을 전한다. 이 시기 서울 노래는 명동, 소공동, 남대문, 광화문, 세종로, 삼각산, 을지로, 마포, 미아리고개와 우이동까지 광범위하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서울 노래는 전쟁의 잿더미를 딛고 국가재건의 기운이 가득 찼던 활기찬 서울의 풍경을 전해준다. 이시스터즈의 ‘서울의 아가씨’, 차은희의 ‘서울의 전차 차장’, 김상희의 ‘서울의 버스 여차장’등 당대 서울 서민들의 희망찬 모습을 전해준다. 당시 지방민들은 시골을 탈출해 무조건 서울로 올라가는 엑소더스 신드롬(Exodus Syndrome)이 강력했다. 사대문에 거주하기 힘들어 하층구조를 이뤘던 지방민들이 거주했던 청계천, 삼선교, 삼각지, 용산, 노량 진, 영등포, 아현동, 마포 그리고 서울 외곽의 불광동이나 우이동, 도봉산의 지명이 처음으로 대중가요에 등장했던 것은 이 같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1967년 발표된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는 직접적 상관은 없지만 사라진 입체교차고가도로의 추억을 소환한다. 신호대기 없이 도로를 통과했던 입체교차로는 청계천 고가도로와 함께 한동안 서울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한 바퀴를 돌 때마다 일년을 더 산다는 소문에 시골 노인을 태운 관광버스는 기본 7번을 돌고 갔다는 이야기는 유명했다. 남백송의 ‘춤추는 서울뻐스’는 서울 지명이 무려 16곳이나 등장한다. 서울, 중량교, 동대문, 녹번리, 세종로, 국제극장, 한강, 노량진, 삼각지, 흑석동, 서울역, 남대문, 답십리, 청파동, 영등포, 신설동까지 그야말로 서울 지명의 향연이다.
 은방울 자매의‘마포종점’은 성장일로의 사회분위기가 팽배했던 서울 도심에서 소외된 변두리 서민들의 고단했던 삶을 어루만져준 위로의 노래였다. 당시 변두리 마포는 서울 시가지를 누볐던 전차의 종점이었고, 이 노래가 발표된 1968년은 서울 전차가 운행이 중단된 해였다. 2절에 등장하는 여의도는 비행장으로 묘사되어있다. 여의도 비행장은 1916년 건립된 국내 최초의 공항이었다.

7090시절의 서울 지명송

 1970년대 서울 노래는 종로의 공중전화가 등장하는 이장희의‘그건 너’, 양희은의 ‘서울로 가는 길’, 빈부격차를 언급한 양병집의 ‘서울하늘’등 포크송이 사랑받았다. 혜은이의 ‘제3한강교’즉 한남대교는 한남동과 강남 영동을 연결해 경부고속도로로 이어지던 강남 개발의 상징 같은 다리였다. 1979년 발표된 이 노래는 향락가로 변모한 강남이 강북을 밀어내고 서울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음을 예고했다.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 유영석의 ‘압구정동’, 신성우의 ‘rock’s roll+압구정동 공주병’등 80-90년대 대중가요들은 압구정동, 서초동, 방배동 등 강남이 기성세대의 밤 문화와 오렌지족으로 상징된 10대들의 신세대문화가 공존하는 서울의 핫 플레이스였음을 증언한다.
 1988년 발표한 이문세의‘광화문 연가’에 등장하는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 길은 이별의 징크스가 선명하지만 이성과 한번쯤 걸어보지 않은 이가 없는 서울의 명소로 통한다. 풍요로웠던 고도성장시기인 90년대의 과소비문화는 IMF라는 경제 환란과 불황을 불러왔다. 당시 김흥국의 ‘59년 왕십리’, 동물원의 ‘혜화동’ 같은 강북 지명의 노래들이 다시 등장한 것은 가난했지 만 낭만이 넘쳤던 과거 강북시절을 그리워하는 정서의 반영이었다.

2000년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서울 지명송

 사실 8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의 지명이 들어간 대중가요는‘촌스럽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래서 지명송은 젊은 세대들이 좋아하는 팝이나 포크, 록 장르의 노래보다 기성세대들이 좋아하는 트로트에 국한된 경향이 있다. 컴퓨터와 디지털이 세상을 지배한 2000년대 이후 서울 노래는 자신의 추억이 녹아있는 장소의 특징과 느낌을 담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유재석의 ‘압구정날라리’,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등이 대표적이다. 듀엣 UV의 ‘이태원 프리덤’은 해외에서도 패러디물이 등장하며 국경을 초월하는 인기를 입증했다.
 2012년 발표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강남에서 태어나고 자란 강남 키드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빌보드 싱글 차트 2위까지 오르며 한국대중가요의 위상을 높인 이 노래로 인해 서울 강남은 미국 뉴욕이나 프랑스 파리와 동급인 럭셔리한 공간으로 세계인들에게 각인되었다. 2000년대 이후 서울 지명송은 다양한 장르로 확장되고 있다. 지금의 대중은 자신이 다니던 장소의 특징과 느낌을 전하는 서울 지명송에서 묘한 재미를 느끼며 공감한다. 이제 서울의 지명이 등장하는 노래를 촌스럽게 여기는 대중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