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9호 테마비평: 일본 문화의 기발한 상상력, 아니메] 아니메, 새로운 진화에 성공할 것인가

 아니메(アニメ, Anime)는 일본의 대표적인 아이콘이 자 주력산업이다. 애니메이션이 아닌, 만화영화라는 용어 로 불리던 시절부터 이미 일본의 아니메는 우리나라를 비 롯해 세계의 TV시장을 점령하였고 이를 통해 전 세계의 대중들이 손쉽게 일본의 문화코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도 록 하였다. 만화로 출발하여 애니메이션, 게임, 완구를 비 롯한 다양한 상품들로 연계되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산업 은 아시아국가들 중 유일하게 세계 시장을 석권한 핵심 산 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니메를 이끌었던 황금기 이후 감 독들의 세대교체에 실패하고 3D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한 애니메이션 트렌드의 변화 등으로 아니메에 대한 대중 들의 관심도 점차 축소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에서 새로운 흥행기록을 세운 <귀 멸의 칼날> 신드롬은 아니메가 쇠락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진화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아쉬움을 던져준 다. 분명히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퍼포먼스의 연출을 통해 대중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작품이지만 아니메의 신화를 이루었던 과거 명작들의 기록을 뛰어넘는 지금의 현상을 아니메에 환호했던 모든 세대가 받아들이기에는 힘들고 안타까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니메, 저물어가는 신화

 아니메는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을 지칭하는 말로 시작 되었지만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상징하는 일종의 브랜드 네임에 가깝다. 아니메의 초석을 다졌다고 평가받는 데츠 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을 시작으로 아니메는 SF, 시대물, 스포츠, 개그는 물론 순정, 성인물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통해 애니메이션 산업 강국인 미국과 함께 오랜 기간 동안 전 세계의 애니메이션 시장을 지배해왔다.
 지브리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를 비롯하여 사이버펑크의 혁신이 되어 버린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 에반게리온 신화의 안노 히데야키 등 애니메이션에 관심 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한두 명의 아니메 감독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감독들 이 즐비하다.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영원할 것만 같던 아니메의 위치는 분명히 이전과는 많 이 다르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사실상 아니메는 발전을 멈추었다. 무엇보다 감독의 연출력이 작품의 흥행 여부에 절대적 요인이었던 아니메의 특성상 우수한 차세대 감독들로의 세대교체가 이루 어지지 못한 점은 아니메가 산업적으로도 성공하지 못하고 위축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반면, 미국은 3D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의 변화에 성공하면서 빠르게 새 로운 애니메이션 트렌드를 구축해 나갔다. 이를 주도한 미국은 기존의 2D 애니메이션에서도 풀 프레임의 풍성한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한 연출방식을 고수해왔던 만큼, 3D로의 전환은 이 를 좀 더 입체적이며 현실적인 시각효과로 전반적인 퍼포먼스를 업그레이드하는 절호의 기회 가 되었고 대중들은 3D 애니메이션의 자연스러움과 현실을 넘어드는 공간의 경험에 익숙해지 고 있으며 풍부한 퍼포먼스와 화려함을 보여주는 극사실적인 공간의 표현에 열광하기 시작하 였다.
 시작부터 제작비용 절감을 위한 방식을 기반으로 발전해왔던 아니메의 적은 움직임은 풍부 한 액션과 입체적인 공간의 표현까지 가능한 3D 애니메이션에 비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 러한 부족함을 조금이나마 보완할 수 있었던 것이 감독의 기획과 연출에 대한 역량이었으나 새 롭게 등장한 감독들이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에는 부족한 역량을 보이면서 아니메의 신화도 서서히 저물어가게 된다.

아니메, 퍼포먼스 중심의 트렌드로 진화하다

 아니메 역시 3D를 중심으로 한 제작기법의 전환을 시도하였으나 오랜 기간 동안 만화를 기 반으로 한 2D 특유의 전형성을 구축한 만큼 아니메가 보여주는 부분적인 움직임은 이미 대중 들에게 각인된 동작의 감성인터라, 풀 프레임의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변화된 3D 애니메이션은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하지만 늦게나마 새롭게 등장한 차세대 감독들이 기존과는 다 른 스타일로 진화한 연출의 아니메들을 2D와 3D가 융합된 방식으로 선보이고 대중적인 성공 을 이끌면서 다시금 변화가 시작되었다.
 호소다 마모루, 신카이 마코토와 같은 신진감독들은 휴 머니즘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 판타지 멜로 등 감성적인 장르의 작품들을 제작하면서 기존의 아니메가 가진 시각 적인 전형성은 유지하고 퍼포먼스에서는 자연스러운 감성 을 보여줄 수 있도록 풀 프레임에 가까운 작화를 통해 풍 성한 움직임의 연출을 선보였다. 여기에 3D를 배경으로 활용하여 자유로운 공간의 표현이 가능하도록 하고 자연 스러운 카메라워킹을 선보였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너의 이름은> 등 두 감독의 작품들은 아니메 특유의 레이 아웃과 함께 풍부한 퍼포먼스, 감성적인 연출로 상업적인 성공과 호평을 받으면서 차세대 아니메 감독으로 인정받 았다.
 액션 중심의 작품들에서도 기존과 달리 퍼포먼스 중심 의 작화와 3D를 혼합한 연출이 대중들의 눈길을 끌기 시 작했다. 특히 게임 오프닝 영상 제작, 액션 활극 등에서 강 렬한 동작의 퍼포먼스와 특유의 액팅 연출을 선보인 제작 사 유포테이블(ufotable)이 참여한 여러 작품들에서 실사 영상과는 확연히 다른 아니메 특유의 고속액션 퍼포먼스 를 연출하면서 작품의 스토리보다 액션 신의 비주얼과 연 출로 주목받게 되는데 이러한 제작사의 장점이 대중들에 게 각인된 작품이 바로 <귀멸의 칼날> TVA판이다. <귀멸 의 칼날>은 2016년부터 소년점프에서 연재된 만화로 많은 인기를 얻었던 작품이지만 <원피스>, <나루토> 등처럼 원 작만화 흥행을 통해 TVA로 연결된 대작들과는 차이가 있다. <귀멸의 칼날> TVA가 2019년부터 방영되면서 엄청 난 흥행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하였고 이에 힘입어 원작 만 화의 판매부수까지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일종의 역주행을 한 것이다. 현재까지도 원작만화의 판매부수가 최단시간 내 판매 1위를 기록하고 애니메이션은 일종의 신드롬을 만들어내는 등 일본 아니메, 만화 역사상 새로운 신기원을 만들어내고 있다.

귀멸 신드롬, 아쉽기만 한 아니메의 진화

 새로운 신진감독들의 작품들과 <귀멸의 칼날>이 보여주듯 아니메는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기존의 정지된 화면에서 섬세한 레이아웃과 대사중심의 스토리텔링을 진행하는 것이 아닌, 따 뜻한 감성을 오롯이 섬세하고 풍부한 퍼포먼스와 세련된 공간의 연출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3D를 활용한 배경으로 기존의 빠른 컷 전개만이 아닌 자연스러운 카메라워킹도 가능해졌다. <귀멸의 칼날>은 아니메 장르 중 강점이라 할 수 있는 판타지 액션을 통해 새로운 시각적 유희 를 창조하였고 3D 애니메이션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2D 아니메 특유의 비주얼과 다채로운 앵 글을 유지하면서 빠르고 변화무쌍한 동작과 화려한 퍼포먼스의 고속액션을 완성하였다. 최근 국내에서도 개봉한 극장판은 이러한 퍼포먼스 진화의 정점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19 년 만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끌어내리고 역대 일본 박스오피 스 1위에 오르며 새로운 신화를 완성했다. 하지만 세대를 아우르며 전 세계의 대중들에게 각인 된 아니메의 문화적 성과와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생각할 때 귀멸 신드롬은 뭔가 아쉬움을 남게 한다. 분명히 진화한 아니메임이 틀림없으며 원작 만화의 평가 역시 소년 열혈만화의 전형으로 적절한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일본의 만화나 아니메가 지 금껏 수많은 대중들에게 각인될 만큼 큰 울림과 감성을 전달해 준 많은 명작들과 비교할 때 그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를 본다면, 선뜻 충분히 넘어설 만 하다는 동의를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 이다.
 코로나라는 지금껏 겪어본 적 없는 전 세계적 현상과 오랜 기간 주춤해왔던 일본 내 자국 문 화콘텐츠의 기근현상을 고려한다면 일본 대중들의 <귀멸의 칼날> 신드롬과 이 작품에 열광하 는 현상을 정서적 측면과 내셔널리즘의 측면에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아니메가 일본만이 아닌 세계 여러 나라의 대중들이 즐기는 문화콘텐츠였던 만큼, 아니메를 열렬히 즐겨왔던 제3국의 대중들에게 일본의 변화된 문화적 현상을 보여주는 귀멸 신드롬은 반갑기만 한 현상으로 다가오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문화의 장벽을 넘어 사랑을 받던 아니메의 명작들이 현재의 정서적 감성과 내셔널리즘에 점철된 작품으로 인해 그 자리를 내어주는 현실이 더 안타깝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최민규 / 대구대학교 영상애니메이션디자인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