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9호 기획: 미국 필리버스터 개정 논의] 필리버스터 제도 논쟁과 의회 민주주의의 위기

 총기 규제법 개정은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공약 중 하나로, 최근 애틀랜타와 콜로라도 총격 사건 이후 총기 규제법 개정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필리버스터의 벽에 가로막히자, 일각에서는 필리버스터라는 제도 자체의 개정 역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249호 <기획> 지면에서는 미국 필리버스터 개정안 논의와 함께, 현재 미국의 필리버스터가 어떻게 시행되고 있고 그 의의는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필리버스터 제도는 야누스의 얼굴을 갖고 있다. 특정 법안의 통과를 막기 위한 무제한 토론은 한편으로 다수의 횡포를 막고 소수를 보호해 줌으로써 민주주의의 숭고한 가치를 구현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추악한 정파 싸움과 답답한 국정교착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 제도는 오래전부터 미국 상원을 상징해 왔으나 2012년 한국 국회에 도입되어 이제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근래 미국에서 필리버스터 제 도가 다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관련 사안을 짚어봄으로써 오늘날 의회민주주의가 직면한 위기와 시사점을 정리해보자.

바이든 앞의 필리버스터라는 장벽

 조 바이든(Joe Biden) 미합중국 대통령은 금년 1월 20일 취임 이래 과감한 국정 변혁을 시도하고 있다. 정권 교체에 의례적으로 따라오는 정도가 아니다. 전임자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와 상반된 국정 기조를 견지하는 데 더해 트럼프 시절에 커진 국정 난맥상이 워낙 심각한지라, 바이든이 추구하는 변혁은 그 폭과 깊이에서 급을 달리한다. 그러나 앞에는 여러 장벽이 있다. 특히 상원 필리버스터(Filibuster, 합법적 의사진행 지연, 무제한 토론) 제도라는 장벽은 큰 위협요인이다. 입법을 통한 변혁을 이루려면 여러 법안이 양원을 통과해야하는데, 하원에서는 의사 진행이 다수주의 방식을 따르는 데다 민주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덕에 별 어려움이 없다. 문제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 대 50석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원이다(더욱이 민주당 50석은 우호적 연대 관계에 있는 2명의 무소 속을 합한 숫자다). 비록 해리스 부통령이 타이브레이커(Tiebraker)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상원에서만 허용되는 필리 버스터를 통한 방해를 종결시키려면 전체 의석의 5분의 3인 60 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이 장벽 앞에서 바이든 입법 의제 대부분이 무기력하게 멈춰있거나 대폭 수정되고 있다. 경기 부양안, 코로나 피해지원안 등은 취지가 크게 희석될 정도로 수정되었고, 투표권 보호안, 워싱턴 D.C. 주 승격안, 이민법 개정안, 총기 규제안 등은 공화당의 필리버스터 위협에 좌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총기 규제안은 최근 애틀랜타, 콜로라도 등 각지에서 총격 사건이 이어지는 가운데 긍정 여론이 대세이고 바이든이 강력히 지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리 버스터 위협으로 비관적인 상황이다. 투표권 보호안도 선거 투표의 문턱을 높이려는 몇몇 주의 움직임에 쐐기를 박는 내용으로 바이든의 핵심 의제이지만 마찬가지로 힘든 상황에 있다.

정당 대결의 도구로 변질된 미국 필리버스터 제도

 미국 상원의 필리버스터 제도는 긴 역사를 지니나 요즘처럼 양극적 정파 대결의 일상적 도구가 된 것은 20세기 후반의 일이다. 애초엔 상원의원 몇 명이 개인적 소신으로 특정 법안을 막기 위해 시도했을 뿐이고 정당정치가 원동력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필리버스터를 종결시킬 아무 규칙도 없다가 1917년에 와서야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종결(Cloture)시킬 수 있게 되었고, 1975년에는 종결 요건이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으로 완화되었다. 과거엔 워낙 드물었기에 필리버스터가 시도되면 드라마처럼 세간의 흥미와 관심을 끌 정도였다. 영화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1939)는 필리버스터를 극적 소재로 삼아 유명세를 탔다. 필리버스터에 부정적 이미지를 씌운 사례로는 남부주 상원의원들이 1950~60년대 일련의 시민권 법안을 막고자 펼쳤던 필리버스터를 들 수 있다. 관련해서 1957년 써먼드 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은 24시간 넘는 발언으로 최장 기록을 남겼다. 1970년 도입된 ‘다중심의(Multi-tracking)’ 방식은 필리버 스터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미국정치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했다. 이전에는 필리버스터가 실시되는 동안 상원 본회의가 전면 중단됐으나, 이제는 필리버스터 도중에 다른 급한 사안을 다루고 필리버스터 발언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필리버스터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과 기회비용이 낮아져 필리버스터 횟수가 급증하고 남발되게 되었다. 심지어 실제 발언 없이 필리버스터 의사 표시만으로 법안 표결을 막을 수 있게 되어 필리버스터가 일상화되었다. 이제 필리버스터가 정당 대결의 도구, 특히 소수당의 무기로 변질된 것이다. 더욱이 20세기 말과 21세기, 여러 요인으로 정치 양극화가 악화된 가운데 소수당은 다수당과 입장을 달리 하는 첨예한 의제에는 거의 예외 없이 필리버스터를 시도하게 되었다. 다수당은 60석 이상을 차지하지 못하면 주요 의제의 입법화를 강행할 수 없는 취약성에 노출되었다. 결국 미국 상원이 이분법적 정당대결, 중간 조정의 실종, 입법 교착이라는 고질병을 갖게 된 이면에는 필리버스터의 성격 변화가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하겠다. 2013년부터 행정부 고위직 및 연방판사 인준에, 2017년부터는 대법관 인준에 필리버스터를 할 수 없게 되는 등 다소 완화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미국정치의 갈등과 교착에 필리버스터가 도구로 남용되는 대세를 막을 정도는 아니다. 또한 대통령과 다수당이 필리버스터를 피하고자 예산조정 절차, 행정입법 등에 의존하는 우회 전략을 쓰기도 하나 필리버스터의 위력을 꺾기에는 한계가 크다.

▲미국 진보 단체들이 벌인 필리버스터 폐지 청원운동 ⓒGoogle

필리버스터를 지탱하는 전략적, 사상적, 경험 연구적 매력

 근래 민주당 일각에서 필리버스터 제도를 철폐하거나 약화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바이든 입법 의제를 살리고 의회의 입법 기능을 원활하게 해 미국정치를 정체에서 건져내자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공화당이 격렬히 반대할 뿐 아니라 민주당에도 반대하는 중도적 상원의원들이 있다. 아울러 언젠가 다수당이 바뀔 수 있다는 점, 다수당이 입법 결과에 대한 책임을 다 짊어져야 한다는 점 등도 민주당이 필리버스터 철폐에 적극 달려들지 못하는 이유다. 이런 전략적 계산보다 더 근본적으로 필리버스터 제도를 떠받치는 원동력은 학문 분야에서 온다. 사상적으로 다수주의보다 합의주의(혹은 초다수주의)를 지향하는 관점에서는 필리버스터가 유용한 제도다. 다수주의가 계약론 및 공리론 자유주의에 뿌리를 두는데 비해, 합의주의는 자연법사상, 입헌주의(Con-stitutionalism)에서 파생된다. 특히 20세기 후반 이래 도덕론 자유주의의 현대적 재탄생을 주도한 롤스 (Rawls)의 사상, 현대 공동체주의에 입각한 숙의민주 주의 모델 등에서 결과 중심적 표결보다 과정 중심적 토의를 강조하면서 합의주의는 널리 공감을 얻고 있다. 더욱이 수의 논리보다 선호도의 논리, 포퓰리즘보다 다원주의, 정당 집단주의보다 개인 소신을 우선시 하는 관점이 반향을 일으키며 합의주의가 정치제도의 사상적 나침반으로 매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필리버스터 제도의 철폐는 힘들어 보인다. 경험적으로도, 사회 다양성이 높을수록 다수 독재와 소수 항거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 합의주의가 다수주의보다 바람직한 모델이라는 여러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오늘날 탈냉전, 탈산업, 탈물질주의, 정보화, 지구화 등 전환적 시대조류가 사회 다양성을 극대화하고 있는 가운데 합의주의적 필리버스터는 경험 연구 측면에서도 공감을 얻고 있다.

의회민주주의의 위기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전략적 동기, 사상적 매력, 경험 연구의 뒷받침 등을 볼 때 미국 필리버스터 제도는 적어도 당분간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전술했듯이 필리버스터가 정쟁의 도구로 입법 교착에 일조하고 있다는 점은 큰 고민거리이다. 필리버스터 위협이나 실제의 시도가 일상이 되어 초당적 지지를 받는 무난한 입법 의제만 통과 가능해졌고 개혁적 의제는 입법화가 요원해졌다. 이것은 다수당만의 문제가 아니고, 입법주도권을 행정부에 빼앗겨 위상이 실추되고 불신 대상으로 전락한 의회 전체의 문제다. 의회의 입법 생산성이 떨어지고 대통령과 행정부는 행정입법에 의존해 국정을 강행함에 따라 힘의 균형과 조화가 깨져 의회민 주주의에 위기가 초래된 것이다. 이 문제는 필리버스터 제도가 있는 한국에서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의 일환으로 도입된 필리버스터는 한편으로 긍정성을 발휘했다. 소수당은 법안 상정을 막기 위해 물리적 충돌을 마다하지 않던 파괴적 이미지를 벗을 수 있었고 다수당은 일방적 직권상정의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었다. 또한 미국에서와 달리 필리버스터는 의원 발언으로만 국한시켰고, 발언은 해당 법안에 직결되어야만 하게 함으로써 남발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미국의회에 비해 우리 국회는 너무 경직된 정당 집단주의에 지배되기 때문에 필리버스터가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는 잠재성이 크다. 현재는 다수당이 필리버스터를 종결시킬 수 있는 압도적 의석을 차지 하고있어 그 파괴력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런 예외적 상황이 아닐 경우 미국에서처럼 필리버스터가 입법과정을 교착에 빠뜨려 결과적으로 행정부의 입법주도권을 강화시키고 의회민주주의를 위축시킬 위험성이 농후하다. 정치권과 학계는 그런 상황에 대한 대비를 공동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임성호 /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