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9호 책지성: 무라카미 하루키,『양을 쫓는 모험』(1982)] 나와 세계에 맞서는 현실 영웅 서사

잃어버린 과거와 낭만


 소설 『양을 쫓는 모험』(1982)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9), 『1973년의 핀볼』(1980)과 함께 하루키 초기 3부작(이하 쥐 3부작)으로 불리는 작품이다. 각각의 이야기는 완결구조를 취하고 있으나, 세 작품 모두 동일 주인공 ‘나’가 자신의 청춘을 추억하며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극도의 허무주의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서사적 연결 고리를 형성한다. 그리고 소설은 그 청춘의 과거를 60년대 도쿄, 학원 투쟁, 민주주의 열기, 이상, 낭만과 재즈 등으로 그려낸다. 3부작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양을 쫓는 모험』은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거 학원 투쟁과 이상 실현에 몰두했던 ‘나’는 이제 고도로 발전된 도시 사회 속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하지만 패배감 내지는 상실감을 지워내지 못한 채 어딘가 현실 세계와 유리된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런 ‘나’는 어느 날 알 수 없는 사건을 계기로 양을 쫓는 모험을 시작하고, 소설은 이 사건을 통해 마침내 과거와의 이별을 선언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린다.
 소설은 평범한 직장인 남성 ‘나’가 과거에 만났던 여성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을 접한 것으로 시작된다. 장례식에 향하며 ‘나’는 그녀가 25살에 죽을 것이라고 확신 섞인 말을 던졌던 것을 기억해내며, 그녀가 죽은 26살의 오늘이 기묘하게 와닿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내는 이별 통보를 건넨다. 소설은 그 이유에 대해 “당신에게서 현실적인 친밀함을 느낄 수 없다”는 아내의 목소리를 전한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의미였으나 인간관계라는 것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오고 떠나는 것이었음을 떠올리며 자신을 위로한다. 그 후, 예상치 못한 만남과 이별은 반복된다. 그리고 ‘나’가 검은 정장을 입은 남성과 대면했을 때 그는 알 수 없는 사건에 휘말려 양을 쫓는 모험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그의 31살이 시작되고 신비스럽지만 다소 쓸쓸한 분위기와 함께 양을 찾는 모험은 시작된다. 기묘한 일은 ‘나’의 여정을 따라 다닌다.

이상의 과거와 잘 이별할 것

 힘을 뺀 하루키의 문체로 이야기하는 여정의 시작은 얼핏 보면 그저 평범한 30대 남성의 스토리인 듯 보인다. 그러나 소설은 다음과 같은 힌트로 여정의 시작에 이유를 부여하고 있다. 먼저, 그가 과거에 만났던 여성의 죽음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그녀와 함께했던 60년대를 그리움으로 추억하게 하며 ‘나’가 과거에 대해 정리되지 못한 감정이 있음을 드러낸다. 또한, 아내가 전달하는 이별 통보는 ‘나’가 현실을 잘 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그 이별을 동요 없이 받아들이는 ‘나’의 모습은 그가 인간관계와 세상을 지나치게 캐주얼하게 바라보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뿐 아니라 소설은 주인공의 현재 직업(광고 카피라이터)을 소개하며 이것 역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을 전달하는 것인 양 표현하는데, 이는 과거에 천착한 채 현실과 유리된 주인공의 상태를 강조하는 장치다.
 독특한 것은 『양을 쫓는 모험』속 주인공이 찾는 양은 실체가 없는 상상 속의 존재로,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관념”처럼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는 앞서 말한 주인공의 상태와 연결할 때 이상적인 관념으로 가득 찼던, 그러나 이제는 실체가 없는 ‘나’의 과거(60년대)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하루키는 소설 대부분을 두고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여정의 시작에 대한 앞선 힌트들과 함께 이러한 사실은 하루키 역시 ‘나’와 비슷한 감각(과거에 매몰되어 현실과 유리되어 있음)으로부터 『양을 쫓는 모험』을 통해 과거 청산을 시도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결국, 해당 소설은 현실이라는 지반에 두 발을 단단히 두고 있다는 감각 하에 새롭게 이 세계를 살아가고자 하는 작가의 다짐을 반영한 창작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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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담론과 악

 한편, 소설은 이 여정을 악을 쫓는 여정으로 표현해내며 지난 10년간의 여정(쥐 3부작의 시간적 배경)을 확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소설의 표현에 따르면 관념으로서의 양은 “자본, 권위, 체제, 권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양은 특정 인간에게 깃들 때만이 비로소 권력의 실체가 될 수 있다. 양이 선택한 인간의 몸이 그 실체이며 양-인간은 어느 때보다 가장 강력해질 수 있으나, 자기 몸의 주인으로서 주체성은 상실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이 모험을 시작하기 전 양은 몇십 년간 일본 우익 거물의 몸에 있었고, 그 거물은 오랜 기간 양의 힘을 빌려 사회에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인간의 몸은 양의 목소리 하에 움직이기 때문에 양이 몸을 떠나는 순간 인간은 양이 깃들기 이전보다 더 쇠약해진다. 양에게 익숙해진 나머지 양이 떠난 이후로는 스스로 자신의 삶과 몸을 주재할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양은 인간 사회의 도덕적 기준과는 상관없이 오직 자신의 힘을 증식하기 위해서만 움직이기 때문에 인간 사회에선 악의 기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닌다. (필자는 이 소설에서는 그 악의 가능성이 우익 거물의 지나치게 강력한 힘, 따라서 사회에 계층적인 권력 구조를 만들어내는 그 힘을 통해 묘사되고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인간의 주체성을 상실하게 하는 실체 없는 권력이자 ‘악의가능성을 지닌’ 관념으로서의 양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식으로 이야기할 때 세계와 개인의 몸에 침투하는 구조·담론·권위임을 이해할 수 있으며, 하루키는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이 거대 담론을 악의 가능성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나약함에 보내는 찬사

 소설은 결국 ‘나’와 령(靈)이 된 쥐(주인공의 오랜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양을 쫓는 모험』을 마무리한다. ‘나’는 고독과 우울감에 젖은 쥐가 어떻게 양과 만나 그와 함께 죽음을 택할 수 있었는지, 그 경과를 듣게 된다. 쥐가 말한 바는 다음과 같다.
 비교적 강인하고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으나 자기만의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한 쥐는 세상을 피해 홋카이도의 산골짜기 별장에 숨어든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폭설이 찾아오고 쥐는 별장에 갇히게 된다. 그렇게 춥고 외로운 상태로 세상의 끝에 내몰린 그에게 어느 날 양이 찾아온다. 인간의 품이 그리웠던 쥐에게 양이라는 존재는 유혹적이었고 양은 따뜻함을 선물한다. 그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함에 젖고 자신의 몸을 양에게 허락한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의 몸은 양에게 완전히 잠식당해 있었고, 통제력을 잃은 채 그저 양이 된 자신을 목격한다. 그리하여 쥐는 자신의 몸에 뿌리내린 양과 함께 죽음을 택한다. ‘나’는 쥐에게 양이 주는 힘을 포기하고 왜 죽음을 택했는지 묻는다. 필자가 이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 대목 때문인데, 쥐는 이렇게 답한다.

“왜 (양을) 거부했나?”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흘러가는 시간 위에 소리도 없이 눈이 쌓이고 있었다.
“난 나의 나약함이 좋아. 고통이나 쓰라림도 좋고 여름 햇살과 바람 냄새와 매미 소리,
그런 것들이 좋아. 무작정 좋은 거야. 자네와 마시는 맥주라든가….”
쥐는 거기서 말을 끊었다.
“모르겠어” p.258


 ‘나’의 관점에서 『양을 쫓는 모험』은 과거를 좇는 체험을 통해 그 시기로부터 마비된 자신의 감각, 주체성을 일깨우는 사건이다. 그러나 동시에 하루키는 악과 권위, 관념의 이미지를 통해 20세기 후반에 유행했던 후기 구조주의와 푸코의 담론을 끌어오고 있다. 양의 죽음과 쥐의 선택으로부터 하루키는 개인을 배제한 완전한 거대 담론은 존재할 수 없음을 증명하고 있으며, 그 관념보다 강력한 인간성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하루키는 쥐 3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이라는 대장정을 통해 자신의 과거로부터 언제나 이상이었던 ‘관념’을 죽이고, 변화된 이 세계를 향해 힘차게 나아갈 것을 표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강력한 담론, 양을 죽이는 영웅적인 존재는 이 세계에서는 언제나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인간 존재라는 우리 모두 또 하나의 현실 영웅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지선 기자|Jiseonkim@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