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9호 기자칼럼] 콜롬비아 대규모 시위를 바라보며

 이시아르 볼레인(Icíar Bollaín) 감독의 영화 <Even the rain>(2010)은 2000년 볼리비아 물 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라틴아메리카에 남아 있는 스페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잔재, 원주민과 백인 권력층 간의 갈등을 다룬다. 작품은 영화 속 영화라는 설정으로 스페인 영화 제작자들이 콜럼버스 정복기를 재현하기 위해 볼리비아에 찾아와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을 담는다. 그러나 촬영 도중 정부는 물 민영화를 결정하고, 생계를 위협하는 높은 수도 가격에 원주민 배우들은 촬영을 포기한 채 민영화 시위에 가담하게 된다. 이와 함께, 영화는 원주민 배우를 중심으로 콜롬버스 정복기 촬영 과정과 물 분쟁 이야기를 교차하여 보여준다. 마치 500년 전 식민지배의 착취·계급구조가 2000년 볼리비아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듯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4월 말, 콜롬비아 두케(Iván Duque) 정부는 소득세 징수 기준을 낮추고 부가가치세 부과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두케 정부의 이러한 세재 개편안은 “중산층과 서민들의 부담을 가중한다”며 많은 시민의 반발을 낳았다. 저항이 거세지자 정부는 해당 세제 개편안을 철회했다.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달걀 12개의 값에 대한 질문에 시세의 5분의 1가격으로 답한 재무장관은 “물가도 알지 못한 채 세제를 개편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사임됐다. 그러나 시민들은 계속해서 분노하고 있다. 시위는 전국적으로 번지고 현재까지 약 2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필자는 이번 시위를 보며 영화 <Even the rain>을 떠올렸다. 영화 속에서 정부는 원주민 마을의 지하수 연결관을 통제한 채 “수도관을 다시 연결하려면 그에 해당하는 돈을 내라”며 토착 원주민들의 1년 치 봉급을 요구한다. 도시 시민들에게는 얼마 되지 않는 이 수도세가 토착 원주민들에게는 왜 생계를 위협하는 결정인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백인 지배층-정부의 모습은 현실 사회 속 콜롬비아 재무장관의 이미지와 중첩된다. 영화 속 스토리가 볼리비아 물 전쟁만을 가리 키지 않는 것처럼, 이번 시위는 단순히 ‘세제 개편안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해당 사건은 스페인 정복 시기부터 지금껏 약 500년간 지속된 불평등의 정치가 영화 속 배경인 2000년 볼리비아 물 전쟁을 거쳐 여전히 진행 중임을 증명한다.
 팬데믹으로 인한 장기 봉쇄 속 콜롬비아의 빈곤율은 40%대로 치솟았고,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콜롬비아를 제외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국제사회는 오랫동안 지속된 불평등의 정치, 부패와 빈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온 것이라며, 해당 시위는 곧 콜롬비아를 거쳐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확산될 것이라 말한다. 오랜 불평등과 시민의 분노, 그리고 정부의 폭력적인 시위 진압 속에서 필자로선 여전히 긍정적인 결과를 예측하긴 어렵다. 하지만 부디 이번 시위는 라틴아메리카의 오랜 불평등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김지선 기자 | Jiseonkim@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