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9호 문화비평: 지식인] 다시 사르트르를 읽자

 장기화한 팬데믹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앎의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지식인’과 ‘대학’이라는 양 날개로 격동의 시대를 비행한 이 앎의 여정은 이제 새로운 국면을 불가항력적으로 맞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지면에서 나는 전후 사상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르트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사르트르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지식인’이라는 표상을 만들어낸 대표적인 인물이다. 사르트르의 철학은 프랑스에서 탄생했지만, 프랑스라는 지리적 한계를 넘어서서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사르트르만큼 전 세계의 대중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친 철학자는 드물다.
 영미권은 말할 것도 없고 제삼세계 민족주의자들까지 그의 책을 탐독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가 내세운 실존주의는 모든 존재하는 것에 대한 철학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칸트나 헤겔 같은 유럽의 철학자들을 “추격”해야 한다고 생각한 많은 비유럽인에게 사르트르의 철학은 곡진한 자기만의 체험에서 철학을 길어낼 수 있다는 계시와 같은 것이었다.

지식인은 무엇인가

사르트르의 관점에서 지식인은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모순을 인지하는 존재이다. 이런 까닭에 지식인은 프롤레타리아에 속하기 어렵다. 언제나 이 모순을 고민하고 이야기할테니, 자신의 계급에 속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지식인은 부르주아도 아니고 프롤레타리아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 처한다. 물론 누가 지식인이 되고 말고 하는 문제는 특정한 개인의 선택사항이 아니다. 구조적인 차원이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지식인이 되기 위한 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누리기 어렵다.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개인들은 산업적 발전과 상업적 이윤을 추구하는 일에 매진하도록 강요당한다. 이와 같은 추구는 본성상 자유롭게 보이지만, 사실은 국가를 통한 보이지 않는 규제가 여기에서 작동한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1943)는 이런 문제를 근본에서 파헤친 역작이다. 이 책을 보면 패기만만하게 후설과 하이데거의 논쟁에 개입하는 사르트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사르트르의 철학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 이 장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스승 후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추상성과 구체성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어, 후설은 빨강을 하나의 추상으로 본다고 말하는데, 여기에서 추상적이라는 것은 형상을 갖는다는 뜻이다. 이런 형상적인 추상성의 반대에 놓이는 것이 ‘사물’이라 는 구체성이다. 1905년 6월 20일 파리에서 태어난 사르트르는 1924년부터 4년간 파리고등사범 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학위를 취득한 뒤에 그는 다른 철학자들처럼 파리와 르아브르에서 철학을 가르치다가 1933년 독일의 베를린으로 연구조교 자리를 얻어서 가게 된다.
 사르트르가 이처럼 베를린으로 가게 된 까닭은 모든 것을 심리학으로 환원하는 심리학주의 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한 이런 경향은 모든 학문 영역을 심리학을 통해 재구성하려는 시도였다. 쉽게 말하면, 윤리든, 미든, 신앙이든, 모든 것을 심리로 환원해서 말하는것은어렵지않다.이런 관점이라면, 어린 시절에 겪은 나라 잃은 설움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 에 못박히는 것을 자청했다는 식으로 『신약성서』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성서 해석은 상대적인 주관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심리학적 설명은 결과적으로 상대주의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사르트르는 이런 심리학주의를 극복하려고 후설로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후설이야말로 심리학주의를 자연주의로 보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현 상학을 제시한 장본인이었다. 여기에서 후설이 자연주의라고 지칭하는 것은 시공간적 현실에 속하는 존재로서 미리 주어진 세계에 맞추어 작용하는 ‘일반정립(General thesis)’을 학문의 주제로 삼는 태도를 의미한다. 주어진 세계에서 체험과 의식은 실재적 사건으로서 존재한다. ‘일반정립’은 주어진 세계를 통해 정립된 어떤 앎의 체계일 것이다. 후설의 목표는 이런 자연주의의 심리적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는 순수논리학의 이념을 정립하는 것이었다. 자연적 태도를 괄호치고, 현상학적인 환원을 하는 것이 선험적 태도를 획득하는 방법이라고 후설은 생각했다. 선험적 태도라는 것은 현실에 적응한 자연적 태도를 없다고 치는 태도이다.
 브렌타노의 지향성 개념을 발전시켜서 후설은 심리학주의의 공식, 말하자면 심리가 대상을 반영한다는 도식적 전제를 비판한다. 현상학에서 대상은 의식이 향하는 지점을 의미한다. 후설은 이 대상에 개체 뿐만 아니라, 개별 종이나 사태, 그리고 본질 같은 이데아적인 보편 대상도 포함한다. 훨씬 대상을 포괄적으로 설정한 것이다. 후설에 따르면, 대상은 지향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지 의식이 대상에 심리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측면이 “아래로부터 만들어지는 철학”이라는 현상학 본연의 성격을 드러낸다. 이미 주어진 모든 관념과 편견을 버리고 오직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 현상학이라는 점에서 사실에 집착하는 경험주의나 실증주의와 완전히 다른 철학 이라고 할 수 있다. 대상과 의식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것은 심리학적 분석이 아니라, 자연적인 일반정립을 판단 중지 한 상태에서 대상과 의식 사이에서 역동성을 구성하는 선험적 의식구조를 기술하려는 학문이 현상학이다. 이 현상학은 후일 현대 프랑스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사르트르가 그선두에서있었다.

모든 것에 대한 철학

 사르트르와 현상학의 조우는 보부아르의 회고에 등장하는 데, 어느 날 카페에서 친구 레몽 아롱에게서 현상학적인 관점에 서 보면 탁자에 놓인 살구 칵테일도 철학이 된다는 말을 들은 후였다. 아롱은 독일에서 후설의 책을 읽고 돌아와 사르트르에 게 현상학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그때가 1933년이었고, 사르트르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얘질 정도로 놀라워했다고 한다. 사르트르는 그날 당 장 레비나스가 후설에 관해 쓴 책을 사서 읽고 다음 해에 후설을 배우러 베를린 으로 갔다. 자신이 마시는 칵테일 한잔에 대한 철학을 할 수 있다는 말은 관념론 과 실증주의를 거부하고 사물 자체로 돌아가고자 했던 당시의 사르트르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계시였다. 이런 사르트르의 생각은 심리학주의를 비판한 후설 에게서 출구를 발견한 것이다. 현상학의 환원이라는 것이 바로 이처럼 사물 그 자체로 돌아가서 생각한다는 뜻이다. 주어진 가정과 가설에 의거한 판단을 포 기하고, 경험 이전에 절대적으로 주어진 것에 대한 의미를 추구하는 작업이 현상학의 환원이다. 달리 말하면, 이 모든 환원의 작업은 대상과 의식의 관계만을 들여다보면서 그 사태 자체를 분석하는 것이다.
 최초의 조우 이후에 사르트르는 4년 동안 후설을 공부했다. 후설에게 사로잡힌 채, 그는“후설주의자”로 오랫동안 살았다고 고백한다.『존재와 무』에서 사르트르는 하이데거 편에 서서 후설을 비판하는 제스처를 취하 지만, 실제로 하이데거보다도 후설에게 훨씬 더 깊은 사상적 친밀감을 느꼈다는 사 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현실적 친근감이 이론적인 결별을 보상해주지 못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그는 점점 더 이론적인 측면에서 후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존재와 무』는 후설을 떠나서 실존주의를 정립하는 제자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자타가 공인하는 사르트르의 걸작이 바로 이책이기도하다. 그러나 인간 실존에 대한 존재론적인 분석이라는 이 책에 대한 정의는 첫 장을 펼치는 순간 수없이 난무하는 난해한 개념과 표현에 부딪혀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철학서이면서 독자에게 인내심을 요구하는 어려운 책이다. 사르트르는 후설의 현상학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을 실존이라는 테마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후설의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바로 인식의 문제이다. 후설의 문제의식은 헤겔 이후 침체에 빠진 독일관념론을 극복하고, 인식의 영역에서 철학의 위상을 재정립 하는 것이었다. 이 목적을 달성하려고 후설은 ‘마음에 대한 로고스’라는 관점에서 심리학주의라는 인간에 대한 자연과학적인 이해에 대항해 현상학을 주창한다. 독일관념론의 쇠퇴는 곧 실증주의의 융성으로 이어졌고, 이런 경향은 과학주의에 대한 철학의 투항을 조장했다. 갈릴레이에서 시작해서 뉴턴으로 이어지는 과학주의적 전통은 생활세계를 자연과학적인 관점에서 이론화하고 이념화하는 한편, 질적인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모든 사물 현상을 양적인 대상으로 환원하는 편향을 보였다. 이런 사정은 오늘날 더욱 강화되면 강화되었지 약화되지 않았다. 전례없는 미디어의 범람과 원격 통신 기술의 발달은 역설적으로 이런 개별성을 점점 더 축소시키고 있는 상황이라 고 할 수 있다. ‘지식인’이라는 말이 더 이상 효능감을 가지지 못한 용어일지라도 이런 개별성 을통한보편성에 대한 재고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다시 사르트르를 읽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 택 광 /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