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0호 리뷰: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상식을 뒤엎는 뮤지컬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1994)에서 저자 린 헌트(Lynn Hunt)는 ‘가족 로망스’ 개념을 통해 프랑스 혁명을 설명한다. 프로이트 이론에서 만들어진 이 개념은 신경증 환자들의 환상을 가리키는 말로 아이가 성장, 독립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바라보는 이상화된 부모의 이미지를 부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함축한다. 그러나 가족 로망스를 겪는 이들은 “이제는 자신이 낮게 평가하게 된” 부모의 이미지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대체로 더 높은 사회적 지위와 이미지를 가진 다른 사람들로 부모를 대체”하고자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당시 프랑스 대중이 오랜 기간 프랑스 왕가를 “확장된 형태의 가족”으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신성한 가정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위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혁명을 진행하기 위해선 신성화된 국부와 국모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대중 스스로 이 가부장적 집단에서 탈피해야만 했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루이 16세와 마리 왕비의 단두대 처형 역시 수많은 사람 앞에서 그들의 목을 내려침으로써 왕족 역시 똑같이 ‘죽을 수 있고, 땅에 묻힐 수 있는’ 동일한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도 이와 같은 지점을 바라보고 있다. 공연 속 대중들은 신성화된 국부와 국모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기 위해 이들을 지나치게 포르노적으로 묘사한다. 헌트가 저서에서 지적하는 “정치 포르노그라피”의 현장이다. 이 방법은 실로 효과적이었다. 루이 16세는 성불구, 즉 기본적인 남성·인간으로서의 능력이 없는 인물로 묘사하여 그의 정치적 무능함을 강조한다. 마리 왕비는 동성애와 불륜 등 문란한 성생활을 즐긴다며 그녀를 도덕적으로 부족한 인물로 그려낸다. 손희정 젠더 연구가에 따르면 “형제(남성)들의 혁명”으로부터 남성적인 시선을 체현한 혁명 대중은 “국왕의 성적 능력 결여와 여왕의 방탕함을 자격 박탈의 조건”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왕비가 즐기는 사치와 향락, 여기에 ‘방탕한 성생활을 즐기는 여성’의 이미지를 갖게 된 마리 앙투아네트는 대중의 신임을 빠르게 잃는다. 은밀하고 추잡한 여성으로서의 왕비는 더이상 프랑스의 신성한 어머니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실제로 루이 16세는 정치범이라는 명목으로 재판받고 사형됐지만 마리 왕비는 사치와 향락, 방탕한 성생활이 고려되어 잡범으로 처형됐다).
 하지만 역사 기록에 의하면 그녀는 지난 왕비들과 같이 국고의 10% 이상을 사치에 쓰지 않았다. 오히려 왕비가 사용했던 양은 한 해 예산의 약 3% 미만이었고, “빵이 없다면 케이크를 먹어라”라는 발언 역시 그녀가 말한 것이 아니다. 동성연애와 불륜 등 성생활에 관한 그녀를 둘러싼 수많은 소문 역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렵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렇듯 잘못 구성된 마리 왕비의 부정적 이미지를 재구성하려 시도한다. 헌트의 언어에서 “형제(남성)들의 혁명” 혹은 “형제들의 상상력”에서 주조된 마리 왕비에게 지워진 지나친 여성성과 포르노적 이미지, 그리고 배제된 여성들을 혁명의 중심에 재위치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마리 왕비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녀를 동화·순백·순수·모성 등과 같은 이미지로 그려내거나, 혁명 군중들을 ‘폭도’들로 이야기하며 가족을 지켜내려 고군분투하는 마리 왕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극적인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기엔 지나치다. 또한, 강한 모성을 지녔지만 동시에 여린 감성을 지닌 왕비를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며 관중의 공감을 끌어내는 ‘마그리드’라는 여성이 사실은 왕비와 같은 피를 공유한 자매였다는 것 역시 사족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를 꼭 한번은 관람해보길 권유하는 것은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오케스트라의 선율, 배우들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함께 너무도 일반적으로 여겼던 상식들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드는 메시지 때문일 것이다.


김지선 기자|Jiseonkim@khu.ac.kr